매일신문

배트를 든 야구의 여신…WBC개최국 美의 장삿속

'Baseball, Beisbol, 야큐(野球), 빵추(棒球), … 그리고 야구'

불과 7개월만이다. 아직도 케이블방송에선 한국대표팀의 경기장면이 하이라이트로 재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의 감동은 컸다. 그리고 지금, 온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한국 야구는 '2009 WBC(World Baseball Classic)' 무대에서 진행중이다. 특히 WBC는 3년 전 한국 야구의 위상을 입증하는 계기였기에 WBC는 우리나라에 고마운 대회였다. 이번 대회도 일본에 2대14, 7회 콜드게임이라는 수모도 겪었지만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1대0으로 꺾고 아시아시리즈 1위로 16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3일 있었던 WBC 대진표가 나오면서부터, 야구를 아끼는 이들의 WBC에 대한 시선은 냉담했다. 2006년 처음으로 WBC가 열렸을 때는 '처음이니까'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 대회마저 괴상한 대진방식이 나오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잔치에 꼽사리로 참가하는 대회냐', '미국이 스포츠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됐다'는 비아냥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돈되는 경기를 더 많이… '더블 엘리미네이션'(Double Elimination)

이번 WBC는 지난 대회와 달리 '더블 엘리미네이션' 경기방식으로 바뀌었다. 굳이 우리말로 바꾸면 '이중(二重)예선' 정도. 이 제도는 2승을 먼저 챙기면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고, 연패를 당하게 되면 곧바로 탈락하는 경기방식. 진정한 강자만 상위 라운드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강팀간의 대전 횟수를 늘려 흥행에 성공하려는 것이다. 조별리그로 갖는 경기수나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갖는 경기수는 6경기로 동일하기 때문. 이는 야구와 축구를 비롯해 세계 어떤 스포츠에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경기방식이다.

이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일부분 차용한 것. 리그에서 1위는커녕 승률이 가장 낮아 '와일드카드'로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한 플로리다 마린스가 1997년과 2003년 월드시리즈에 우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난 대회 역시 각조 2위팀이었던 일본과 쿠바가 결승전을 치렀다. 이처럼 엉뚱한 경기방식은 강팀이 즐비한 중남미 국가를 피하기 위해 미국이 택한 '억지 춘향격'라는 지적이 높았다.

이번 대회에 도입된 '더블 엘리미네이션'이라는 희한한 대회방식도 투구수 제한과 맞물려 콜드게임을 대량 양산, 경기의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 역시 1라운드 일본과의 1차전에서 2대14로 콜드게임패한 뒤 2차전에서는 1대0 완봉승을 거뒀다. 믿었던 선발이 무너져 점수차가 크게 나면서 주력 투수들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뒤짚기를 시도해봤자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패자부활전이 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 대비해 투수력을 아끼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이나 멕시코 등 강팀의 콜드게임패가 나타난 이유는 이래서였다.

◆미국이 주최만 하면 말썽

356만여명의 관중동원과 총수입 3조2천억원을 올린 94미국월드컵. 321억명이 TV를 통해 월드컵을 지켜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대회에서도 흥행을 중요시한 미국과 FIFA의 일방적인 경기시간 배정으로 어느 해보다 이변이 많았던 대회로 기록됐다. 특히 유럽지역 시청자들의 시청시각(오후 5시 이후)에 맞춰 시청률이 높은 중계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대낮 경기(미국현지 낮 12시~오후 2시)도 불사했던 만큼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것. 당시 상황을 현지에서 보도한 본지 기자는 '오로지 더위와의 싸움'이라고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당시 보도를 옮겨보면, '처음으로 미국에서 열린 이번 월드컵은 선수들의 기량과 전술 등 경기 내적인 요소보다도 무더위라는 경기 외적인 요소가 승부의 변수로 작용할 듯 보인다. 특히 한국이 2차례의 예선경기를 펼치는 댈러스는 한낮의 최고기온이 연일 35℃를 넘고 있어 선수들의 체감온도는 40℃ 가까이 될 것으로 보여 무더위와의 싸움에서 승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한국·스페인전이 열린 댈러스 코튼볼구장은 바깥 기온이 35℃를 웃도는 뙤약볕이 내리쬐 해수욕장에 나와있는 듯한 느낌이다.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열이 이글거리는 이곳은 특히 그라운드의 체감온도가 40℃에 가까울 것이라는 것이 월드컵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현지의 더위는 그늘에 위치한 보도석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라고 했다.(본지 1994년 6월 18일자 보도)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낮 12시~오후 2시 사이에 경기를 치른 나라가 적잖았다. 당시 F조에 속해 6월 20일 낮 12시 30분부터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경기를 치른 벨기에와 모로코는 40℃에 육박하는 기온 탓에 경기 후 선수들이 집단 탈수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미스테리 대진표는 어떻게 나왔나

이번 대회의 대진표도 미스테리다. 하지만 대진표의 미스테리는 아직까지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온라인 등에서는 온갖 설(說)만 난무하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전 대회 우승국이라 프리미엄을 받은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고개를 끄덕일 만큼 귀에 쏙 들어오진 않는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이 있긴 하지만, 미더운 것도 아니다.

WBC 조직위원회는 "지난 대회 최종성적을 기준으로 각 조별 대진표를 짰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제 대진표는 좀 다르다. 지난 대회 1위는 일본, 2위는 쿠바, 4강 진출팀은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하지만 유독 미국이 속한 C조에서만 지난 대회 4강에 든 팀이 없다. 2라운드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는 팀 중에서도 지난 대회 4강에 든 팀은 도미니카가 유일했다. 하지만 도미니카는 이번 대회에서 네덜란드에 덜미를 잡혀 예선 탈락했다.

이런 이유의 중심에는 메이저리그(MLB)가 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주관하는 국제대회는 앞선 몇년간 성적을 기준으로 대진표를 짜지만, WBC는 IBAF와 관계가 없다. WBC는 MLB 사무국이 주관하는 행사다. 이 때문에 한국이 일본에 비해 불합리한 일정으로 경기를 가진 것도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MLB 입장에선 지난 대회 우승팀인 일본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한다면 대회 흥행 수표가 부도난다는 것. 결국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MLB가 '장난(?)'을 친 것이라는 추측이 억측은 아닌 셈이다.

◆이유는 결국 돈

하지만 WBC 운영위원회 구성을 살펴보면 이들의 장난이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구조라는 걸 알 수 있다. 운영위원회는 MLB 사무국 2명, MLB 선수회 2명, 국제야구연맹(IBAF) 2명, 일본야구기구 1명, 일본프로야구선수회 1명, 한국야구위원회 1명, 한국프로야구선수회 1명, 요미우리신문 1명, 기타 1명으로 구성돼 있다.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나 쿠바 등 카리브해 국가 관계자는 한명도 없다.

실제 WBC는 미국 주도의 대회다. MLB와 MLB 선수회가 공동출자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주식회사'(World Baseball Classic, Inc.)를 설립, WBC의 대회운영 주체로 관여하고 있다. 특히 참가국의 결정 등 WBC 운영에 대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WBC 운영위원회'는 12명의 구성원 중 4명이 MLB 관계자로 전체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WBC의 대회 운영으로 얻은 이익의 47%를 상금에, 53%는 각국의 야구 조직에 분배한다. 47%는 다시 우승 10%, 준우승 7%, 4강 진출 5%, 2라운드 진출 3%, 1라운드 참가 1%로 나눈다. 53%는 다시 MLB와 MLB선수회가 17.5%씩, 일본야구협회 7%, 한국야구위원회 5%, IBAF 5%, 기타 1%로 나뉜다. 특히 주최측인 미국이 수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대회 운영에 적자가 날 때 MLB가 전액을 부담하기 위해서'라는 게 명목.

하지만 지난 대회에서 MLB가 39번의 경기를 치르면서 올린 대회 순수익은 1천280만달러였다. 우승한 일본이 손에 넣은 금액은 우승 상금 10%와 분배금 7%를 합한 282만 달러. 하지만 2라운드에서 탈락한 미국은 상금 3%, 분배금 35%를 합해 631만 달러를 챙겼다. 미국이 올림픽에는 선수보호 등을 이유로 MLB 선수를 참가시키지 않으면서, 투자 효율의 높은 WBC라고 하는 이벤트를 시작한 데는 야구의 저변확대가 아닌, 누가 봐도 뻔한 '돈 문제'라는 말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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