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늘리라고 연일 촉구하고 있다. 여당 대표는 대기업에 금고를 열라고 요구하고, 경제 관련 정부 부처의 장관들은 재계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으니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도 사회의 일원으로 적극 동참해달라는 것이다.
반면 재계의 입장은 여전히 미온적인 것 같다. 현재의 투자 계획만으로도 무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곳간 쌓기 바쁘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12월 결산법인 522개사의 현금성 자산은 2007년 6월 51조9천억원에서 계속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 9월 기준 71조원으로 20조원 가까이 급증했다고 하는데, 이는 기업들이 투자확대보다는 곳간 쌓기에 바쁘다는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찍이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澁澤榮一)는 "기업인은 개인을 이롭게 하는 것인지, 국가와 사회를 이롭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사업을 할 때는 개인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는가를 꼭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경영학'에서 이런 그에 대해 "이 세상의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경영의 본질이 책임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고 격찬했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空前絶後(공전절후)의 기업인으로서 메이지 실업계의 거두였다. 그가 설립하고 관여한 기업은 1873년 일본 최초의 은행으로 출발한 제일국립은행(현 미즈호은행)을 필두로 약 500개에 달하며, 많은 수의 기업들이 지금도 일류 기업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동경상법회의소(현 동경상공회의소)의 설립에 관여했고 동경증권거래소의 창립위원이었으며 그가 관여했던 비영리 활동단체도 약 6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論語算盤說'(논어산반설)을 주창했는데, 그것은 '논어'라는 책과 '주판'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논어산반설의 핵심은 경제와 도덕은 진실로 합치하는 것으로서 경제를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밑바탕에 仁義道德(인의도덕)이라는 도리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들은 '논어와 주판'이라는 강연집으로 전하고 있다.
'논어와 주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지금의 도덕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자에 대해 제자들이 쓴 '논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누구라도 대강은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논어'와 대조되는 '주판'이란 것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아주 어울리지 않고, 대단히 동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주판은 '논어'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논어'는 또 주판에 의해서만 진정한 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논어'와 주판은 아주 멀고도 가까운 것이라고 늘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나 기업은 그 사회에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사회 발전과 복지, 자선 등에 관련된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되고 격차가 생겨서 충돌이 발생할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가능성도 매우 커질 것이므로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가진 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부사와 에이치의 이런 정신은 지금도 일본 경제계의 저변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경영난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 인원 정리를 하면서 회사에서 쫓겨난 사원의 재취직을 위해 직접 소개장을 써서 의뢰하기도 하고, 합리화 대상이 된 사원 전원에게 자기 회사의 주식을 선물하는 일본 기업인의 모습은 그것을 보여 주는 사례들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시부사와 에이치의 말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그런 때인 것 같다. 국민 모두가 경제난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때 대기업이 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면 그동안 국민들이 가졌던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 전통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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