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끄떡없던 부자들도 지갑 닫는다

#대구시내 한 복합상가는 건물내에 명품관을 유치하기 위해 오랫동안 여러 경로로 접촉했으나 결국 명품 메이커로부터 승낙을 얻지 못했다. 명품 메이커들은 "불황이 너무 심해 대구시내에 있는 백화점 명품관도 움츠러들고 있는 판에 새로운 명품관을 내봐야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결국 이 상가는 명품관 유치를 포기했다.

#명품 구매 고객을 주로 상대하는 대구시내 한 백화점 숍매니저는 요즘 전화기가 많이 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부자들은 사실 경기에 크게 민감하지 않은데 요즘은 하도 '어렵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니 연락을 주는 횟수를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지내는가 전화를 걸어보면 "요즘 펀드가 너무 많이 깨지는 바람에 돈이 부족해서…"라는 말만 돌아온다고 했다.

출구를 보여주지 않는 불황의 터널 속, 부자들까지 움츠러들고 있다.

지난해 가을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했을 때도 대구시내 백화점에서 두자릿수의 매출 증가율을 올려주던 부자들이었다.

대구백화점 및 동아백화점이 글로벌 경기침체가 본격화한 지난해 9월부터 지난달까지 자사(自社) 최상위 VIP고객들이 올려준 매출을 분석한 결과, 이 기간동안 대구백화점은 6.7%, 동아백화점은 4.5%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매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9월을 정점으로 매달 조금씩 매출이 줄어온 것으로 집계됐다.

동아백화점의 경우, 리먼 사태가 터진 9월에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10%나 매출이 늘었지만 10월엔 8%, 11월엔 5%로 매출 신장율이 뒷걸음질치더니 12월엔 2%로 내려앉았다.

올들어서는 설이 끼었던 1월에 '설 효과'로 인해 지난해에 비해 4% 매출이 증가했으나 지난달엔 마침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 2% 매출이 줄어들었다. 부자들도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백화점에서 이들 VIP고객들의 매출 비중은 양대 백화점 모두 20%에 육박한다. 물건 10개를 갖다놓으면 2개는 VIP고객들이 사가는 것이다.

부자들이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등 '알뜰 소비'에 가세했다는 통계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득 5분위(상위 20% 계층)'의 외식비용은 43만552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42만4천438원)보다 1.4% 늘어나는데 그쳤다. 부자들로 불리는 '소득 5분위'의 외식비용 증가율은 전체 계층의 외식비 평균증가율(2.2%)보다 1%포인트 낮았다. 모든 소득계층 가운데 외식비용 증가율이 가장 저조했던 것. 소득 5분위의 외식비 증가율은 소득 1분위(하위 20% 계층) 증가율(3.8%)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쳤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소득 5분위'의 외식비 실질지출은 38만8천585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3.0%(1만1천828원) 줄어 역시 모든 계층에서 감소폭이 가장 컸다.

'소득 5분위'의 전년 같은 시기 대비 외식비 실질지출은 지난해 1분기 3.6% 늘어난 데 이어 2분기에 7.2%로 증가 폭이 확대됐었다. 하지만 3분기 들어 -3.7%를 기록하며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소득 5분위'의 곡류·식빵에 대한 실질지출은 2007년 4분기 5만5천97원에서 지난해 4분기 5만9천307원으로 7.6% 증가했다. 전체가구 평균은 5.8%(4만8천816원→5만1천668원)로 부자들의 '집안 식사' 증가세가 훨씬 더 컸다.

대구시내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소비는 심리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데 '안좋다'는 소식이 너무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지난해 4분기 이후엔 부자들까지 지갑을 닫고 있다. 경기회복의 열쇠는 구매력이 큰 사람들에게 있는만큼 정부 정책이 부자들의 소비를 유도하는쪽으로 흘러줘야 한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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