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력보다 도우미 역할…초교 학급반장의 변천

기자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때 학급 반장은 그야말로 '절대권력'이었다. 담임 교사보다 더한 권력을 휘두르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소설)의 엄석대처럼. 전교 회장은 물론 학급의 반장, 부반장까지 자격에 제한이 많았고, 상당 부분 그 자리는 학생 부모의 경제적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육성회장의 자녀는 학급 반장 정도는 '따 놓은 당상'. 물론 부모의 배경이 없더라도 학급 1등 정도면 담임 교사의 후원으로 반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사회 각 분야에 민주화 열풍이 일면서 지금은 전교생에게 임원 후보 자격이 주어진다. 마음만 있다면 자천타천으로 후보자로 나선다. 후보 선출 시기가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학교가 술렁인다. 초등학생들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연설문 상담도 요청한다. 부모님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관련 업체를 찾아 반장선거 상담을 받는 학생들도 있다.

부모들도 임원 선거에 관심이 높다. '어린 시절 반장 경험은 자신감과 리더십을 길러주는 데 좋은 기회'라는 교육적 생각과 함께 이웃집 '누구 엄마'보다 못한 게 없다는 자존심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교육전문가들은 "학교나 학급 임원이 되면 교사와 학생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여러 학생들의 대표로 나설 기회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사회성이 길러진다"고 한다. 초교 시절 임원의 경험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필요한 소통 능력과 사회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임원선거 열풍도 초교 고학년이 되면 시들해진다. 아이들 스스로도 임원이 되길 싫어하지만 부모들이 자녀를 말리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줄이면 '공부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너무 셈이 빠르다. 리더십과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아이를 반장선거에 내몰 때는 언제고, 고학년이 되니 이젠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학교임원은 과거처럼 '절대권력'이 아니고 봉사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우리 아이를 제대로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봉사와 희생의 미덕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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