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존경하는 주금정 선생님께

그저께 비가 내렸습니다. 흙은 한결 헐거워졌습니다. 곧 초록 기운이 대지를 감싸겠지요. 세상의 빛깔이 사람 속으로 들어오면 모두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새 학기라 무척 바쁘시지요. 올해도 1학년 신입생을 가르치게 되셨다고 인편으로 소식 들었습니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중학교 1학년생은 3월 한 달이 힘들다고 합니다. 매시간 선생님이 바뀌는 것이 가장 신기하면서도 적응이 잘 안 된다고 하지요. 선생님들 또한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선생님, 지난 일 년 동안 제 조카 윤복이를 잘 가르쳐 주셔서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남편의 동료교사로 저와 인연이 닿았던 분. 선생님의 고명딸 이슬이와 저의 딸 유진이가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면서 제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어느 해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는 소식은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그 느낌이었습니다. 인연의 끈을 놓치기 싫어 한해가 저무는 날엔 꼭 전화로 인사를 드렸지요. 선생님은 늘 반가운 목소리로 답해 주셔서 일년을 잘 마무리하는 기분이 들게 해주었습니다.

지난해 4월, 선생님과 저의 극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세균성뇌막염을 앓은 조카는 몸이 불편해서 선생님과 교우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가슴앓이로 몸져눕는 동생이 안타까워 제가 담임선생님을 뵙는 자리에 동행을 했습니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데 아, 주금정 선생님 당신께서 조카의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놀라시고 저는 선생님 손을 붙들고 울었습니다. 그 울음의 의미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선생님, 장애 아이를 둔 부모의 마음은 늘 초조와 불안의 연속입니다. 속 타는 어미의 마음을 언니인 제가 이해한다고 하면 그건 어불성설입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20대에 자식의 고통을 지켜봐야 했던 동생은 편히 잠 한 번 제대로 못 자 봤답니다. 학교에 보내면 혹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 새 학기만 되면 그 증상은 더 심하답니다.

선생님께서 조카를 잘 돌봐주셨던 1년, 그 시간에 동생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을 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번달에 시험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의 사랑이 여러 사람의 인생 전환점이 된다는 사실을 주 선생님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윤복이 친구들에게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나 장애를 겪을 수 있는 삶에서 동행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실천하신 분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따스한 손길이 조카에겐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그 시간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학교 가는 일이 가장 즐거웠던 조카, 바깥세상 나들이에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제 조카는 천사입니다. 나쁜 마음도 가질 줄 모르고, 나쁜 말도 할 줄 모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이 아이에게 봄날 같은 세상은 모두의 배려에서 가능하겠지요. 그간 노고에 다시 한 번 더 감사드리며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장남희(성서중학교 2학년 박정윤복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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