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는 1968년에 민족사학이던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통합해 개교했다. 청구대학은 최해청이 1950년 재산을 출원해 세웠고 대구대학은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최준이 47년에 설립했다. 그러나 청구대학은 학내비리와 사고, 5·16쿠데타로, 당시 삼성이 위탁해오던 대구대는 삼성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국가에 헌납된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학교 통합 후 이름을 영남대로 바꾸고 운영대리권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맡겼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도 영남대 정관에 '교주(校主)는 박정희'라고 명시돼 있다.
1980년 신군부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영남대 재단 일을 맡겼다. 박 전 대표는 1980년부터 8년간 이사장과 이사로 일했다. 이 시기에는 사실상 박 전 대표가 학교를 운영했다.
하지만 부정입학과 복지기금 전용 의혹, 박 전대표 측근의 학교 운영 개입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영남대는 1988년 사학 사상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입시부정으로 재단퇴진, 이사진 전원사퇴 등을 요구하는 학내 분규가 계속되면서 1989년 2월부터 임시이사체제가 시작됐다.
임시이사체제가 길어지면서 소유권주장도 본격화 되었다. 박 전 대표의 동생 근령씨는 2002년 영남대에 1천100억원을 출연할테니 영남대 운영권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정부가 2006년 4월 영남학원을 임시이사 해제 사학으로 분류, 재단정상화 움직임이 본격화 되자 구재단 가족들의 소유권 회복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청구대학의 이사장이었던 전기수씨의 4남 재용(성형외과 의사)씨도 2007년 6월 기자회견을 통해 박 전 대표의 영남대 이사장 및 이사 시절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철저한 검증을 요구했다. 최근에는 청구대 설립자 최해청씨의 아들 찬식씨도 영남대가 추진중인 재단정상화 논의에서 지분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령씨는 2006년 말 영남학원 임시이사 직무행정정지 가처분신청을 했으나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서울행정법원에 영남학원 임시이사 선임취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최창희기자
-1968년 1월 청구대학과 대구대학 통합으로 영남대 출범
-1980년 4월~1988년 박근혜 영남학원 이사장 및 이사 재직
-1988년 10월 영남대 교수협의회 총회, 재단퇴진 결의문 채택
-1989년 2월 문교부 임시이사 선임(관선이사 체제 시작)
-2004년 학교법인 영남학원발전위원회 구성(재단정상화추진소위원회 작업)
-2006년 4월 17일 교육부, 영남대를 비롯한 10개 대학 정상화 의지 표명 / 6월 교수회·총동창회에서 학원정상화 추진위원회 구성 의결
-2007년 12월 28일 이사회에서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상화위원회 규정' 제정
-2008년 5월 재단정상화 관련 1차 설문조사후 문제제기로 10월, 2차 설문조사 / 10월 20일 '재단정상화 추진 방식 걱정하는 교수들' 명의 성명서 발표 / 11월 27일 정상화추진위원회, 박근혜 전 대표에게 재단참여 요청
-2009년 1월 22일 박근혜 전 이사, 4명의 이사, 영남학원 3명 이사 추천
-1월 23일 영남대 비정규직교수노조와 총학생회, 지역시민단체 20여개 비상대책위 구성
-2월 3일 '구재단복귀 반대하는 영남대 원로교수' 기자회견
-2월 19일 : 이사회 정상화 방안 확정
-2월 22일 : 법인이사회 이사진 구성 및 발전방안 담은 정상화계획서 교과부에 제출
-3월 19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영남대 정상화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 시작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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