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 자전거 예찬

목표향한 '고속도로' 잠시 벗어나 '국도'달리며 여유.반성 만나보자

내 자전거는 아팔란치아 팀콤프 3.1 무광 흑색이다. 이전에는 직장 후배에게 얻은 중고철티비(프레임이 철로 된 일반형 자전거를 일컬음)를 탔었는데, 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멋진 MTB족들 때문에 결국 지름신이 강림해 버렸던 것이다. 자전거를 구입하기 전날 밤, 난 솔직히 이 녀석 생각에 흥분되어 잠도 오지 않았다. 이전까지 '자전거는 그게 그거다'라는 내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이 자전거는 저가형 유사산악자전거에 속하지만 3년 전만 하더라도 자출(자전거 출근)이나 하이브리드급으로 입문하려는 이들에겐 인기가 꽤 높은 편이었다. 구입 후 며칠을 닦고 조이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러 각종 용품들을 쇼핑하고, 부분 업그레이드를 위해 자전거 전문점을 찾는 등 그렇게 아내가 질투할 정도로 자전거에 애정을 쏟았다. 지금은 그 관심이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녀석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원인 모를 뿌듯함에 미소가 절로 머금어진다.

난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좋다. 특히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영남외국어대학에서 신방리 松栢池(송백지)까지 이어진 왕복 2차로 국도는 최고다. 내가 '뚜르 드 남천'(Tour de Namchon, 왕복 50㎞, 3시간 코스)이라 이름 붙인 이 코스는 우리 집에서 경산 석정온천까지 자전거 도로가 나 있어 안전할 뿐만 아니라, 경사의 굴곡 또한 평탄해 크게 고통스럽지 않다. 또한 청도로 향하는 4차로 국도가 바로 옆에 신설된 관계로 교통량이 적어 공기조차 깨끗한 편이다.

요즘 국도는 모두 4차로로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는 중이다. 봉화나 청송 같은 오지로 여행을 떠날 때에도 고속도로 못지않은 국도를 만나곤 해 가끔 놀라기도 한다. 물론 이런 편의성으로 인해 운전은 한결 수월해지고 여정의 시간은 대폭 단축되었다. 왕복 2차로의 불편함을 없애고, 도농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간다. 하지만 예전 국도가 우리에게 선사하던 '시골스런 맛' 같은 것을 찾아볼 수 없어 때론 안타깝기도 하다.

'카'(CAR)라는 애니메이션은 미국 픽(Pixar)사가 2006년에 제작한 레이스 카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로지 우승이라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스피드에만 집착하던 우리의 주인공 카(car) 메퀸은 다음 레이싱 대회 장소로 이동하던 중 우연한 사고로 인해 고속도로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국 66번국도 변 '레디에이터 스프링스'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는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지루한 곳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되고, 결국 이곳에서 만난 변호사 샐리와 판사 닥 허드슨의 도움으로 인해 '왕복 2차로 국도의 소중함'이라는 느림의 미학을 배우게 된다. 즉, 삶은 그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러한 반성과 자기 성찰만이 훌륭한 전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만들어진 전통은 결코 고루하거나 따분한 것이 아니라 존경받고 지켜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마을 바로 옆으로 뚫려버린 시원스런 고속도로로 인해 이제는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는, 그런 관광객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져가는 한 시골 마을에 관한 이야기인 이 애니메이션은 스피드에 소외되어가는 현대인에게 참으로 진중한 물음을 던져준다. 당신은 한 번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 돌이켜 반성하고 있는가?

뚜르 드 남천은 나에겐 바로 이러한 길이다. 국도 주변으로 늘어선 포도밭에는 진보랏빛 포도알들이 영글어가고, 언제 도착할지도 모를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손자의 얼굴에는 미소와 여유가 여전하며, 가끔씩 만나게 되는 '금용비니루' '시골마켓'이라고 적힌 간판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길. 속도를 강요받지 않기에 사색이 가능하고, 사색이 가능하기에 반성이 가능한 그런 느림의 길. 오로지 내 두 발에 의지해 달리기에 내 육체의 소중함과 노동의 참된 의미를 일깨워주는 놀라운 길. 예전의 내 삶을 반성하고, 현재의 내 삶을 직관하며, 미래의 내 삶을 기대케 해 주는 그런 자성의 시간들을, 아니 그런 과정의 소중함을 오늘도 나는 이 길에서, 나의 자전거 위에서 강요받는다.

우광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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