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비정규직과 정규직, 하늘과 땅 차이

고용 불안·신분 차별 고착화…경쟁력 향상에 별 도움 안돼

이른바 'IMF 사태' 이후 기업들은 경영의 효율화를 위한 체중감량으로 대대적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또 정부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국가 경쟁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했다. 1998년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파견근로자보호법'에서 파견근로자는 1년씩 고용계약을 갱신하여 2년이 지나면 저절로 직접고용이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1년씩 계약을 갱신한 뒤 채 2년이 되기 전, 계약 해지를 해버렸다. 정식 고용 부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였다. 해고된 방송사 비정규노조나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 등 비정규 노동자들이 '고용 안정'을 위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 7월부터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법'이 시행되었다. 입법 취지는 파견직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보호 및 차별 금지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2년 경과 이후 '고용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계약 해지가 이어졌다.

예컨대,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은 이 법이 시행되기 직전, 회사에 의해 대량 해고되었고 생존권을 둘러싸고 노사 간 갈등이 1년 이상 지속되기도 했다.

이제 오는 7월이 지나면 2년간의 고용 이후 정식 고용을 해야 하는, 5인 이상 300인 미만을 고용한 50만 개의 기업들은 큰 부담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를 제외하고 대개는 이 조항을 회피하기 위해 채 2년이 되기 직전에 '계약 해지'를 한다. 파견 노동자나 기간제 노동자 당사자들은 해고를 당하는 셈이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실직자가 늘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대략 1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마이너스' 성장이니 '고용 없는 성장'이니 하는 판국에, 또다시 대량 실직 사태가 불을 보듯 뻔하니, 당국으로서도 대단히 입장이 난처하다.

그래서 3월 12일, 노동부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확정 발의했다. 그 핵심은, 기간제노동자와 파견노동자의 사용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올 7월 이전에 정규직 전환을 준비하던 기업조차 비정규직으로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이 외에도 기간제한을 받지 않는 단시간 노동의 범위를 주 15시간에서 20시간 이하로 완화했다. 대신 정규직으로 전환 시 사업주 부담의 4대 보험료의 50%를 2년간 지원한다. 파견범위 역시 현행 32개 업종에서 시행령을 고쳐 규제를 더 푼다. 불법파견업체에 대한 단속은 강화한다. 또 차별시정 신청기간을 차별 발생 3개월 이내에서 6개월로 연장하기로 했다.

문제는 과연 이 정도의 내용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거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장 큰 문제는 기간제든 파견직이든 사용 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고 해서 보호가 되거나 정규직 전환이 쉬워지느냐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비정규직을 '현대판 노예제'라는 자조 어린 말까지 나오는 판국에, '그래도 실직보단 연장이 낫다'는 논리는 너무나 소극적 대응임을 고백한다.

또 파견 범위의 확대가 외견상 고용 확대를 가져오는 듯하지만 실은 고용의 질 저하를 확산할 뿐이다. 영세한 파견업체들이 난립하고 중간착취나 실질임금 저하 등 고질적 병폐 역시 고쳐지지 않는다. 정규-비정규 사이에 갈수록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최근 대졸자 초임을 최고 28%까지 삭감한다거나 사기업이나 공교육에 인턴십 제도를 확대하려는 정책과 함께, 비정규직 법안 개정도 그러한 '고용 정책' 중 하나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들은 고용 안정이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경쟁력' 향상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조직에 일체감을 느끼고 자기효능감이 높아질 때 조직 헌신도가 높아지고 창의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 및 신분차별을 고착화하는 제도는 결국 노동자들의 조직 일체감이나 자기효능감을 저하시켜 개별 기업은 물론 나라 전체의 생명력을 침식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이런 중장기적 시각을 놓치면 안 된다.

강수돌(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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