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줄로 읽는 한권] 맥주 한캔하며 야구보는 행복

3월은 야구가 기지개를 켜는 달이다. 정규 시즌의 시작은 4월이지만 3월부터 시범경기가 시작되는 탓에 '야구의 시작은 3월'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나는 일년 내내 야구팬인 와중에서도 이 3월의 야구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진 팀이나 이긴 팀이나 결과보다는 '희망'을 보고자 하기에 3월의 경기들은 언제나 푸근한 매력이 있다.

3월의 야구는 공짜(!)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기장은 텅텅 빈다. '부대끼지 않아서' 더 좋은 것이다. 대개는 치어리더도 없고, 요란한 응원 구호나 앰프 소리도 없다. 상쾌한 봄날씨와 딱 하는 타격음, 그리고 띄엄띄엄 앉아 있는 관중들의 우스갯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정말 살포시 낮잠이라도 잘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한동안은 진구 구장 외야석에 누워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분을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는 남자라고 생각하곤 했다. 야구라는 '게임'을 보는 것이 아닌 야구의 '풍광'을 보는 것. 그것은 분명 현대의 무난한 도락일 수 있다.

진구 구장은 제법 상쾌한 경기장이다. 주변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고, 그 무렵엔 외야석이 편평한 둔덕처럼 되어 있어서 거기에 벌렁 드러누워 맥주를 마셔가며 시합을 보고 있으면 꽤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2, 세라복을 입은 연필』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김난주 옮김/백암/269p/7000원

올해 같은 경우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때문에 마냥 '3월 야구의 여유' 따위를 즐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도쿄돔에서 한·일전이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새벽부터 조바심을 내게 된다. 일본 야구는 실력과는 별개로 단기전에서는 한국에게 곧잘 잡힌다. 아마추어의 시선으로 보건대, 그건 일본 선수들이 야구를 너무 진지하게 해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미국 야구의 역사를 봐도 팀을 여러 번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선수들은 의외로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베이브 루스나 미키 맨틀, 요기 베라 그리고 오늘날의 매니 라미레스 등은 모두들 장난 잘치고, 농담 잘하고,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던 쾌남들이었다. 오늘날 '팀 코리아'의 주축 멤버들 또한 낙천적인 개구쟁이들이 많다. 승부욕은 있을지언정, 항상 웃으면서 털털하게 뛸 수 있는 선수들인 것이다. 나는 이치로나 마쓰자카가 '미간을 펴고' 즐겁게 플레이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2차대전' 분위기의 '사무라이 재팬' 대신 유유자적한 '하루키 재팬'이라면 야구의 매듭이 오히려 더 잘 풀릴지도 모른다.

그 뒤 사와무라는 상이 군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44년에 다시 전쟁터로 끌려가 수송선과 함께 태평양에서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그 시즌 최고의 성적을 올린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상은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조해연의 일본 프로야구』 조해연 지음/지성사/304쪽/1만2천원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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