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42'대구 수성구 범물동)씨는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로또를 1만원씩 꼬박꼬박 구입한다. 과거엔 얼핏 로또방이 눈에 띄면 재미삼아 사곤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박씨는 "주식에서도 재미를 못 보는데다 최근 동료들이 구조조정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이 깊어졌다"며 "희망을 가져볼 것이 로또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로또 대박'을 꿈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황의 골이 깊을수록 로또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정작 로또로 큰 돈을 갖게 된 사람들의 여생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여러 통계나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불황일수록 로또 집착
대구 남구 대명5동에 위치한 로또 판매점. 평일 오후인데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 주인은 "복권 구매고객 중에 30, 40대 남성들이 주류지만 여성들도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며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전체적으로 15% 정도 손님이 증가한 것 같다"고 했다.
경기가 나쁘면 로또 판매율이 올라간다는 사실은 여기저기서 입증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여성전문 인터넷포털이 네티즌 2천367명을 대상으로 새해 소원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2%인 1천707명이 '로또 당첨'을 꼽았다. 최근 한 취업포털이 남녀 직장인 1천213명을 대상으로 '복권구매'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80.3%가 복권을 구매하고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5명 가운데 4명은 복권을 구매한다는 것. 더욱이 현재 복권을 구매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 974명을 대상으로 '이전보다 복권구매가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39.6%가 '그렇다'고 답했다.
로또 판매액도 급증했다. 올 들어 1, 2월에 기록된 회차당 로또 판매량은 평균 47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평균 418억원보다 14.1%나 증가했다.
영남대 심리학과 정봉교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정상적으로 노력하는데 요즘 같은 불황에는 이런 과정이 좌절'상실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부는 그런 상황에서 요행수를 바라게 되고 그것이 중독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 당첨, 건강'부(富) 보장 못해
사람들은 '로또만 돼 봐라'며 로또로 단번에 인생 역전을 노린다. 하지만 여러가지 통계나 사례에서 보듯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최근 외국에서 로또 당첨자가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재정적 안정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 파리경제대의 앤드류 클락(Clark)과 베네딕트 아푸이(Apouey) 박사팀은 1994~2005년 영국에서 로또에 당첨된 8천명을 설문 조사해 로또 당첨과 건강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부유해지면 건강상태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론 건강이 좋아지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로또 당첨 이후 술자리가 너무 많아져 당첨자들의 흡연과 음주가 급격히 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금전적 풍족도 보장하지 못한다. 미국 캔터키대학의 스코트 핸킨스(Hankins) 박사는 1993~2002년 플로리다주에서 5만~15만달러 사이의 고액 로또 당첨자와 1만달러 이하 소액 당첨자의 연도별 재정상태를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고액 당첨자의 재정 상태가 소액 당첨자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 하지만 분석결과는 그 반대였다. 당첨 후 2년 안에 고액 당첨자가 파산한 비율은 전체 당첨자 평균보다 50%나 낮았지만 그 후에는 파산율이 높아졌다. 당첨 후 5년 안에는 두 그룹 모두 5%가 파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첨 후 2년 내 로또 당첨자의 평균 파산율은 2.16%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당첨자는 파산하지 않았다. 하지만 흥청망청 쓰다 보면 아무리 큰 돈도 눈 녹듯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연구진은 "고액 당첨자일수록 사치에 빠져 재정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쉽다"고 분석했다.
◆불행 사례도 잇따라
로또에 당첨돼 대박을 터트렸지만 결국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들도 적잖다. 2005년 A(41)씨는 로또 1등에 당첨돼 세후 18억9천만원을 받았지만 그 돈을 계좌에 보관하던 부인이 A씨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아 형사고소를 했다. 부인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아 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부부 사이가 원수지간이 되고 가정은 파탄났다. 2006년 로또 1등에 당첨돼 19억원을 받은 B(29)씨는 이후 룸살롱과 도박에 빠져 당첨금 대부분을 날린 뒤 화려하던 생활을 잊지 못하고 금은방에서 수십차례 금품을 훔치다 구속되기도 했다.
2005년 34억원의 당첨금을 받은 40대 남자는 주변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들로 들끓어 시달림 속에 살았다. 급기야 사기도 당하고 장물을 취급하다 경찰에 붙잡히는 수모도 당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로또에 당첨된 이후 행복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무서워졌다고 하소연했다. 2005년에 로또 1등으로 27억원을 받은 부부는 당첨금을 두고 서로 자신의 것이라고 소송을 하면서 갈라서기도 했다. 하물며 우리나라보다 로또 역사가 긴 외국에는 이 같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정봉교 교수는 "갑자기 큰 돈이 생기면 자신이 지금껏 노력해온 정상적인 생활을 잊어버리고 향락에 빠지고 돈을 지키기 위해 인간관계도 끊어버리는 등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며 "하지만 로또 당첨 후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