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는데 돌아와 보니 옆 문짝이랑 범퍼가 훼손돼 있고 측면이 밀려 함몰돼 있었다. 가해 차량은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주차장에는 감시 카메라가 부실해 가해 차량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보험회사에 연락하니 "절차상 경찰에 신고하라"고 해 신고한 뒤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가해 차량을 직접 찾아내고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직접 사과받고 싶은 '지나친 정의감'에 그날 밤새도록 잠을 뒤척였다. 이튿날 아침 출근길까지 분을 삭이지 못해 평정심을 잃고 괜히 돌부리를 차보다가 아직 겨울 끝자락의 언 땅이라 발끝만 아파했어야 했다.
며칠 전 신문에서 접한 사연이다. 딸이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던 직장 상사에게 살해당했는데 당시 언론이 그들을 내연의 관계로 보도, 명예를 실추한 어머니가 수년에 걸쳐 죽은 딸의 명예회복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식사도 라면으로 때우고, 친구도 안 만나면서 산 지가 수년이라고 했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서류철과 법률책이 즐비하였다.
요즈음 장안에는 아내가 불륜의 남편을 복수하는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소재가 유치하고 통속적이며 설정도 황망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상을 대변하며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심지어는 복수의 장렬함에 많은 사람들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간혹 자신의 의지'행위와 무관하게 부당한 상황에 접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달라진다.
타샤 튜더는 미국의 버몬트라는 9만750㎡나 되는 농장의 정원을 가꾸는 동화작가인데, 죽음을 목전에 둔 91세의 할머니가 꽃무늬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정원을 가꾸는 실화인 '타샤의 정원'이란 책을 읽는 순간 나는 가슴이 뛰어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멋있게 사는 할머니는 우리에게 "인생은 근심하며 살기에는 아까워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어요. 난 행복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봐요"라며 아네모네 구근을 다듬는다.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고 멋지며 게다가 짧기까지 하다. 근심하며 혹은 복수의 칼을 갈며 남의 부당함에 지나친 정의감으로 응징하고 정죄하며 살아가기엔 너무 아깝다.
돌부리에 차여 아픈 발가락을 어루만지며 쳐다본 하늘은 흐려 나지막이 내려 앉아 있다. 똑같은 1년인데도 어떤 특별한 날이 있다. 1년에 하루뿐인 날, 그 날을 오늘 아침 느끼고 있다. 겨울은 봄에 한 갈피를 내주기 힘겨워 터질 듯한 목련 꽃봉오리를 얼리려는 듯 매서운 바람으로 후려치며 봄을 시샘하고 있다. 길거리에 서서 그 바람을 맞으며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문을 읊조린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생을 근심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일이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지나친 정의감으로 남을 복수하거나 응징하는 일이니 이는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 우리는 이것들을 구분하는 지혜를 바랄 뿐이다.
053)253-0707, www.gounm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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