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피플&피플]'대구전례꽃꽂이 연구회'

계산성당 한 켠, 단아한 모습의 수녀님이 제단 앞에서 꽃을 꽂고 있다. 신 앞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꽃을 꽂는 모습은 한 편의 그림 같았다. 수녀님이 한 송이 꽂을 때 마다 기도하듯 이리저리 살펴보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여대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안재연(53) 대구전례꽃꽂이 연구회 회장이 꽃꽂이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 풍경이었다.

전례꽃꽂이는 꽃을 이용해서 상징적이고 시각적으로 전례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전례엔 빠지지 않는 요소다. (사)서라벌꽃꽂이협회 연운꽃예술중앙회장직을 맡고있는 안 회장은 1986년부터 전례꽃꽂이를 해왔다.

"신부님이 미사를 드릴 때 제단 주변에 향을 치세요. 제가 꽂은 꽃 위에 향을 칠 때는 매번 가슴이 울컥하죠."

안 회장이 꽃꽂이를 시작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처음엔 전례꽃꽂이도 장식적 요소가 강했지만 15년쯤 전부터는 의미를 부여하는 쪽으로 발전했다. 꽃꽂이에 복음 메시지를 결합해 한 눈에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또 꽃의 양을 풍부하게 꽂았던 초창기와는 달리 요즘엔 단아하고 검소하게 꽂는다. 세련미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시대분위기를 반영하는 탓이다. 재료의 종류도 무한대로 늘어났다. 꽃은 물론이고 한지·초·리본·모래·자갈 등 모든 것이 전례꽃꽂이 재료로 사용된다.

"일반 꽃꽂이와 달리 전례꽃꽂이는 많은 기도와 묵상이 필요해요. 나의 영적 성숙도가 꽃꽂이에 그대로 드러나, 쉽지 않은 작업이죠. 매번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고요."

이런 어려움 때문에 10년 전 대구전례꽃꽂이 연구회가 결성돼 현재 70여개 본당 꽃 봉사자 13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 함께 연구하고 있다. 회원들은 매월 월례회를 통해 각자 복음말씀을 묵상하고 복음적인 영감으로 연구한 작품을 발표한다. 묵상 과정과 꽃꽂이의 기법을 발표하고 서로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2대 양월순 회장님 때였어요. 회장님이 부활절 때 석고보드로 계란 형태를 만들었는데, 그 아이디어가 좋아 여러 본당에서 같이 한적도 있어요. 물론 성당 규모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긴 하지만요."

안 회장은 꽃꽂이(원예치료)를 통해 이웃과도 사랑을 나눈다. 고령 들꽃마을, 논공치매센터 시메온의 집 등에 매주 원예치료 봉사를 다닌다. 4년 넘게 원예치료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꽃의 효능은 상상 이상이다. "노인들은 물리치료가 지루해서 싫어하는데, 꽃꽂이를 하며 원예 가위질을 계속 하다보면 물리치료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기도 해요. 살아있는 무언가를 키운다는 사실이 소외계층에겐 큰 보람으로 다가가죠."

꽃은 매개일 뿐, 사실 손잡아주고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 노인들을 만나면 자신의 노년도 그려보게 된단다. 그러면 그들의 외로움과 고독을 허투루 보고 넘길 수 없다.

"치매 노인들이라도 자식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져요. 자식 이야기 주거니 받거니 하면 참 좋아하셔요." 자신을 못 알아볼 때도 많지만, 그래도 치매 노인들에게 매주 발걸음이 향하는 이유다.

꽃꽂이도 경기에 민감한 분야라, 요즘은 꽃꽂이 취미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직업과 연관시켜 배우기 때문이다. 꽃을 상업적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안타깝다. 일본에는 꽃의 70% 이상이 가정에 꽂히지만 우리나라는 80%가 상업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한두 송이의 꽃이라도 집에 두고 감상하는 문화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안 회장의 바람이다.

"제게 불편함 없이 살아가게 해주신 그 분의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어요. 꽃을 통해 앞으로도 소외된 계층과 만남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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