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에서 '마이스터'(장인)의 경지에 오른 이는 잘 없다. 특히 젊은 무용수들 중에서는 더욱 그렇다. 34세의 나이로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연아(계명대 무용학과 강사)씨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무용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솔직한 인터뷰'에 나섰다. 유씨는 인터뷰가 처음이라고 했다.
◆독일에서 획득한 예술박사
-무용은 언제부터 했나요?
"초교 1년 때 처음 알았습니다. 계성초교에 다녔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토슈즈를 신었지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용에 뛰어들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특별활동 시간에 무용부에서 거의 매일 연습을 했습니다. 현대무용을 하겠다는 생각은 고교시절부터 했습니다."
-쎄유단스(Cie Yu Dans) 무용단 단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데, 무용단 이름은 무슨 뜻인가요?
"'유의 무용단' 정도가 되겠지요. 무용단이 교향악단처럼 고정적으로 멤버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유럽 전체에 있는 무용수들이 활동을 합니다. 무용단 인원은 유동적이지요. 유럽 무용단은 프로젝트식으로도 많이 합니다. 기회가 있으면 오디션이나 개인끼리 연관지어 활동합니다. 지난해에는 대구국제무용페스티벌에서 초청 공연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박사학위를 받은 현대무용가들이 많은가요?
"독일에서 석사학위까지 한 사람은 있지만, 마이스터 학위를 받은 사람은 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받은 사람은 꽤 있습니다. '무용의 범주에서 즉흥 무용의 실제'라는 논문으로 Meister(예술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무용단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그 때문에 학위를 받는 데 8년이 걸렸습니다."
◆삶과 의식과 소외에 대한 표현
-지금까지 어떤 작품을 했습니까?
(이때부터 유씨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어떻게 얘기하지?"라는 말이었다. 난감해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있는 무용이라는 작업이 이미지 중심이어서 더욱 그렇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말로 설명하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주요작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부탁했다.)
"'아인 탱고'의 주제는 한 소녀의 잃어버린 꿈과 살아가면서 이겨내야 할 부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루전'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얘긴데… 주제라… 하… 인간의 잃어버리는 기억에 대한 것,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기억들이 살아가면서 또 생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내가 의식하는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배개'(wege)는 길이라는 뜻인데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 하늘과 태양과 인간, 삶에 대한 것을 얘기했습니다." (휴, 말로 설명하려니 너무 힘들다.)
-인간의 소외와 관련된 작품이 많은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스탠딩'이라는 작품에서도 주부의 삶에 대해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어느 순간 자기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게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아줌마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난 미혼이지만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아줌마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지요. 특히 인간이 측정되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 '메저먼트'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무대에 걸어 인간의 살덩어리로 표현했지요. 돼지고기에 보석도 박아넣어서 더러운 몸, 살덩어리에 자기의 가치를 외적인 것으로 보여주려는 세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했습니다. 무용수는 제자리에서 숨만 쉬고 있을 뿐입니다."
-작품이 얼핏 보면 설치미술 같기도 합니다. 특히 무용수들을 나체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건 공연음란죄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현대무용이라는 게 춤만 추는 건 아닙니다. 공연음란죄라…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맨몸을 드러내는 것과 타이츠라도 입고 나오는 것은 천양지차지요. 표현되는 게 달라 관객이 달리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심지어 작품주제가 달라질 수도 있지요. 물론 무용수 스스로가 벗지 않으려 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존중합니다. 속옷만 입혀 최대 효과를 낼 수밖에 없지요."
-본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성이 있었던 작품으로 최근에 선보인 'The Middle Path II'를 꼽았는데, 어떤 작품인가요?
"세상의 틈바구니에서 개인, 그리고 절대적 이해들이 왜곡된 성, 기아, 테러로 인해 사회 전반에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입니다. 현실에서 인간의 궁극적 행복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이의 관계회복을 기대한다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인간이 가지는 양 극단에 대해 어느 한쪽도 치우치지 않는, 고통과 소멸에 대한 중간 통로로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공연은 올해 6월 대구국제무용페스티벌에 예정돼 있는 작품인데, 예산문제로 아직 미확정입니다. 외국인들을 데려와야 해서 논의중입니다."
-여기에도 전라 장면이 있던데?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습니까?
"외국인 무용수가 다 벗고 나옵니다. 꼬마가 풍선을 치면서 나오다가 갑자기 발버둥친 뒤 전라의 여인이 등장합니다. 인간의 본능, 특히 성적인 욕망이나 열정보다는 본성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아동 성폭력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남성의 바운스신도 있지요. 동성애를 뜻할 수도 있고. 성과 인간에 대해 당연하게 뻗어가는 모습.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무용으로 만들어봤습니다. 관객이 생각해보도록 했습니다. 전라는 환희나 기쁨일 수도 있지요. 시체일 수도 있고, 심리적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해석은 관객의 몫입니다."
◆해석은 관객들의 몫
-연극에 대본이 있듯이 무용에도 안무노트를 갖고 있다던데?
"모두에게 공개된 문자 기록물은 없습니다. 특히 줄거리가 있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대화가 없고 대부분이 상황이나 무용수의 이미지, 움직임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안무노트를 보여줘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실제로는 어린 무용수들에게 동작을 직접 보여주며, 프로 무용수들에게는 작품 내용을 설명해 무용수와 함께 논의합니다. 모든 동작을 짜서 주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슬프다고 해서 우는 것만 표현방식이 아니듯, 슬픔을 어떻게 재해석, 재창조해 무용의 언어로 표현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지요. 각자의 표현방식이 있습니다. 시인들이 각자의 언어로 시를 쓴 뒤 독자에게 해석을 맡기듯 우리도 몸의 언어인 무용으로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깁니다."
-무용계의 통념이랄까, 통상적인 해석방식이 있을 법도 한데?
"'메롱'이라며 혀를 날름거리는 게 사회 통념상 약을 올리는 제스처입니다. 하지만 특정 동작과 연결되는 부분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덧붙여져야할 얘기가 무용수의 몰입이라는 개념인데, 말도 표현하기 힘들지만 결국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메롱을 하는 경우가 없겠지만 표현은 무용수에게 달렸습니다. 무엇보다 무용계에서는 통념이란 게 잘 없습니다. 제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통념이 있다는 게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시인들이나 작가들은 작품을 위해 많은 것을 보고 들으려 합니다. 무용은 어떻습니까?
"마음을 비우려 합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이면 떠오르지 않습니다. 편안한 순간에 이미지가 떠오르지요. 그래서 혼자 무용실에서 주로 공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어떤 것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지요. 나무 하나를 보더라도 나무의 앞과 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고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기억에 담아놓으려고 안무노트에 적어놓기도 합니다. 물론 이미지 중심이다 보니 나만이 알 수 있는 그림을 주로 그립니다. 이미지 중심이지만 앞뒤가 연결되는 것들입니다. '스탠딩'이라는 작품에서는 무대를 닦으며 공연을 시작합니다. 무대를 닦아 정제한다는 이미지도 되지만, 이런 생활을 청소한다는 의미도 갖습니다. 바닥을 닦고 회전의자에 앉아 5분간 빙빙 돕니다. 난 분명히 쉬었는데 어지러운 것들, 혼란을 나타내고 싶어서였습니다. 제대로 서있는 게 뭐냐는 걸 묻고 싶었지요. 버텨내기일 뿐이란 걸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무용은 대중과 동떨어질 수도 있다
-무용이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딜레마입니다. 나의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을 포기하고 내것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안무가의 노력이 필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꼭 대중과 같이 가야 하냐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들이 이걸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 대중화가 아닙니까. 연극과 영화에 돈 쓰는 것을 아깝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뮤지컬이나 영화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공감이나 감동. 쉬운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하지만 클래식이나 미술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무용은 몸으로만 표현하기에 특수성이 있습니다. 순수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예술이라는 틀 안에서 대중에게 즐거움과 유희를 보여주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을 꾸려가려는 의도가 있어 대중과 동떨어질 수 있는 상황도 있습니다."
-무용과 춤의 경계는 무엇입니까? 크로스오버가 요즘의 대세인데?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때문에 일부에서 나이트클럽 분위기를 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적 측면에서 봤을 때 나이트클럽 같은 분위기는 그냥 논다는 것 외에 의미가 없습니다. 무용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썰렁하다는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저게 무슨 의미지? 라면서. 크로스오버도 적절한 것을 섞는다면 오히려 금상첨화입니다. 아프리카 춤이든 어떤 장르든 필요하다면 도입할 것입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유연아는?=대구 원화여고, 계명대 무용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국립 드레스덴 팔루카 대학원 Diplom(석사), 동대학원 무용 안무 예술박사. 전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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