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토요 갤러리] 르네상스도 숨죽인 '女體의 美'

▨ 비너스의 탄생

작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

제작연도: 1484~86년

재료: 천 위에 템페라

크기: 175×279cm

소재지: 우피치 미술관(이탈리아 피렌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일까? 물론 이 황당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문화나 시대 또는 개인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美)의 여신 '비너스'를 여체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동일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비너스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리스 시대 조각인 '미로의 비너스'와 더불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할 정도로 이 그림은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유명작품이다.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의 지배자였던 메디치가(家)의 보호 아래 인문주의자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일찍부터 고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던 보티첼리는 당시로서는 이교도적이라 할 수 있는 고대의 신화에서 종종 그림의 주제를 가져왔다.

대략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는 이 화면의 중앙에는 지중해의 거품으로부터 태어난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조개를 타고 키프로스 섬에 막 도착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놓았다. 그 왼쪽에는 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함께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 여신이 탄 조개를 해안으로 밀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봄의 요정인 호라이가 망토를 들고 비너스의 나신을 감싸려 하고 있다. 시정(詩情)이 넘쳐흐르는 장면이다.

미술사적으로 이 작품은 매우 중요한 누드화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여체의 완벽한 미에 대한 열정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고대 신화의 한 장면에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서로 다른 성격의 여러 의미들을 숨겨 두고 있다.

우선 드러나는 것만도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성기 절단으로부터 비롯된 비너스의 탄생, 여성성과 조개, 물에서의 탄생과 기독교의 세례, 누드와 새로 태어난 영혼 등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이러한 은유와 상징을 재조합하면서 작가의 의도를 유추해보는 것도 이 작품 감상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내용이 가지는 르네상스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조형적으로는 중세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우선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윤곽선, 투명한 색채의 조화, 그리고 리듬감 등에서 볼 수 있는 빼어난 기법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원근법에 의한 공간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표현 수단으로도 면(面)보다는 선(線)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여신의 비현실적인 인체 비례와 기울어진 자세, 그리고 물결, 머리카락, 나무 및 풀밭 등에서 볼 수 있는 세밀하지만 도식화된 표현 등, 이 모든 것이 르네상스 회화의 공통적 특성인 '마치 창문을 통해 보는 것처럼'이 지향하는 사실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작가는 당시 시대정신이었던 사실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완벽한 여체가 주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권기준(대구사이버대 미술치료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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