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옛 시조 들여다보기] 장백산에 기를 꽂고

장백산에 기를 꽂고

김종서

장백산에 기를 꽂고 두만강에 말 씻기니

썩은 저 선비야 우리 아니 사나이냐

어떻다 능연각상(凌然閣上)에 뉘 얼굴을 그릴꼬.

세상이 변하고 변해 사나이다운 사나이보다 꽃처럼 예쁜 사나이들이 인기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다. '꽃미남'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젊은 사내들의 외모가 여성스러움 쪽으로 쏠려 남성다움의 가치가 매몰되고 있다. 곱고 연약한 것이 남성의 이상적인 외모라니, 미적 가치관도 참으로 많이 변했다. 변화는 수용해야 한다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렇게 수상한 시절에 사나이다운 사나이의 기개를 노래한 김종서의 시조를 되새겨 볼 만하다. 그는 조선 세종 때 충신으로 함경도 절제사와 우의정 등을 지냈다. 육진(六鎭)을 개척해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정했으며, '고려사'를 개찬 간행하고 '고려사절요'의 편찬도 감수했다.

말년엔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욕심에 반역죄를 쓰고 두 아들과 함께 살해되는 비극을 맞았지만 그가 남긴 시조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와 함께 이 작품은 대장부의 호방한 기개를 후대에 전하고 있다.

이 작품은 김종서가 육진을 개척할 때 지은 것으로 전한다. 전쟁터에서는 군사들의 사기가 충천했지만 선비들이 나라 걱정보다는 시기와 모함만을 일삼아 만주 회복의 대망을 이루지 못한 울분을 토로한 것이다.

'백두산에다 군기를 꽂아놓고 두만강에 말을 씻기곤 하니 장하지 아니한가. 궁궐에서 남을 시기하고 모함하는 선비들아, 우리의 이 사나이다운 모습을 보아라. 나라에 공헌이 많은 사람의 화상을 그려 거는 능연각에 누구의 얼굴을 걸어야 하겠는가'하고 탄식한 것이다. 대장부의 기상이 작품 전체를 휘몰아치며 불끈 힘이 솟게 한다.

이 작품을 오늘 우리 현실에 비추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군인들은 밤낮으로 국경을 지키고 있고, 국민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경제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은 나라와 국민보다는 당과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싸움만 하고 있으니…. 김종서의 어투를 빌려 꾸중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문무학(시조시인·경일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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