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단어의 앞에 들어갔을 때 '가장 어색하지 않은' 지역명은?
'( )갈비, ( )찜닭, ( )식혜, ( )헛제사밥, ( )간고등어'
1)안강 2)안산 3)안성 4)안동
정답은 '4)번 안동'이다. 안동갈비, 안동찜닭, 안동식혜, 안동헛제사밥, 안동간고등어 모두 안동이 낳은 전국구 먹을거리다. 하지만 먹을거리 못지 않게 안동이 갖고 있는 볼거리도 적잖다. 특히 '하회별신굿탈놀이'(중요무형문화재 69호)가 시작된 곳이 안동이다.
◆웬만한 영화 부럽지 않다.
1997년부터 시작된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은 지난해까지 12년 동안 761회의 공연을 가져 외국인 6만4천여명을 포함, 118만여명이 관람했을 정도. 내로라하는 영화 대작들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특히 국내에서 열리는 상설공연으로는 놀라운 기록이다.
취재진이 찾은 15일도 찬바람이 부는 날씨 속에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하회마을은 북적댔다.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충북, 경기, 강원 등 차량 번호판의 지역은 다양했다.
하회마을까지 1.2㎞를 걷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발걸음이 마을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공연 시작 20분 전,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몇몇 사람들은 좌석에 미리 앉아 있었다. 영화관과 달리 음식물을 먹는 이는 없었지만 카메라는 예외. 보존회 측은 사진 찍는 걸 막진 않았지만 카메라를 든 사람들에게는 미리 구역을 정해줬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구경꾼 셋 중 하나는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 탈놀이 도중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오후 3시가 되자 하회마을 입구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에서는 올해 들어 세번째 상설공연이 시작됐다.
눈대중으로 보니 관객 700여명. 서서 보는 이들도 적잖았다.
"저놈의 소새끼, 여기에 있었구나. 저놈을 잡아다가 여기서 큰 잔치나 벌여야 될따. 가마 보자. 니 수입소제? 안 그라마 안동한우라?"(백정마당 중 일부로 원래 대사는 "저놈의 소새끼, 여기에 있었구나. 저놈을 잡아다가 여기서 큰 잔치나 벌여야 될따"이다.)
박장대소는 아니지만 쿡쿡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공연에 들어간 탈놀이꾼들에게 정해진 대사는 있었다.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는 분위기였다. 즉흥적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었다. 관객과 동화되는 게 이들의 목표처럼 보였다. 공연 중에 관객들을 참여시켜 마당에 나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관객들도 억지로 참여하지 않았다. 스스로 즐기고 있었다.
이날 공연은 전체 10개 마당 전부를 보여주진 않았다. 탈놀이 10개 마당(강신,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선비마당, 당제, 혼례마당, 신방마당) 중 강신, 당제, 혼례마당, 신방마당을 제외한 6개 마당으로 채워졌다. 구경꾼들이 보기 적절하게 1시간 분량으로 맞추기 위해서였다.
◆반세기 만에 원래 모습으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현재의 모습은 1977년 이후부터 이어온 것이다. 1973년 '가면극연구회'에서 시작된 현재의 보존회는 당초 창작한 탈놀이를 보여주다 1977년 이후 800년 역사의 탈놀이를 제대로 복원, 지속하면서 인간문화재도 배출했다. 특히 광복 후 단절됐던 탈놀이를 1981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게끔 노력했고, 매년 가을에 열리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밑거름이 됐다.
이들은 1977년까지 자신들이 창작한 탈놀이를 '하회별신굿탈놀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했고, 이후 800년 역사의 탈놀이를 복원했다. 지금은 인간문화재로 등록된 이상호(64·1996년 인간문화재 지정), 김춘택(58·2000년〃), 임형규(54·〃)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가면극연구회 때는 전부 창작이었어요. 하지만 탈놀이 공연을 하게 되면 1928년에 마지막으로 공연을 했거나 공연을 본 사람이 있을 거라면서 공연을 한 겁니다. 그런 탈놀이가 있었다는 소문은 무성했으니까 1928년 당시에 탈놀이를 했던 사람 중 하나만 찾으면 복원되는 것이라 믿고 공연을 한 거죠. 그렇다 보니 1977년 이전까지는 무당이 나와서 춤도 추고, 지금 생각해보면 엉뚱하기 짝이 없었지요."
하지만 이들은 임하댐 기공식이 있던 날 축하 공연을 가지면서 운명적 조우를 하게 된다. 관객 중 한 명이 1928년 탈놀이에서 각시역을 맡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바로 고(故) 이창희 옹(1995년 작고·인간문화재)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찾았다고 일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탈놀이는 상민이 했던 공연. 이옹이 1928년 17세의 나이로 각시역을 맡은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 후손들의 만류가 컸기 때문. 하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이들은 이옹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희한하게도 이옹은 단 한 번 있었던 공연을 상당 부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안동문화원장을 지낸 류한상 선생의 부친이 기록한 탈놀이 대사본과 비교한 결과 중 대사와 양반 대사 일부가 좀 달랐을 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원형이 복원된 것이었다.
◆복원은 했지만 얇은 선수층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의 구성원 중 여성은 단 둘. 각시역을 맡은 이수자 한명과 준회원 한명이 전부. 그렇다고 남자 회원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탈놀이를 배우겠다며 온 사람도 10년 전에 명맥이 끊겼다.
원래 탈놀이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탓도 있지만 전수를 받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간문화재 임형규씨는 "무형문화재와 관련한 단체는 전국에 140개 정도가 있는데 대부분 전수생이 잘 없어 맥을 이어가기 힘들다"며 "교육 시스템을 개선해 우리 문화를 전수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초·중·고교에서 서양음악을 가르치면서 탈놀이나 판소리 등 우리 문화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은 소소하다는 것. 때문에 전통문화에 눈을 돌리기 어렵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실제 이들은 탈춤반이 있는 학교에 찾아가 회원 영입작전을 펼 정도다. 하지만 공부를 이유로 만류하는 학부모들의 벽에 부딪힌다고 했다.
물론 누구나 인간문화재가 되진 않는다. 이상호, 김춘택, 임형규 세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기까지 30년 가까이 걸렸다. 인간문화재들은 국가로부터 매달 전승지원금 130만원과 의료보호 1종 혜택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 구성원들은 겸업을 해야 한다. 실제 '벌이가 안 돼서' 나가려는 이들도 적잖다는 게 이들의 귀띔이었다.
이 때문에 최근 보존회는 주중 공연도 펼쳐 300일 이상 공연하도록 한다는 조건으로 가칭 '안동시립탈놀이회'를 만들자고 안동시에 제안했다. 각 도시마다 서양음악을 하는 시향이 있듯 안동 특유의 문화를 살려 시탈놀이회를 구성하자는 것이었다.
계승, 발전의 단계를 거치면 '난타'나 '점프' 못지않은 한국의 공연문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김춘택씨는 "안동시도 새로운 전수관 건립을 위해 상당한 예산을 배정할 복안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게 되면 500석 규모의 상설 실내공연장이 생길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영화 '워낭소리'에서 자막으로 경북 북부지역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꿔 보여주듯 LED 전광판을 통해 탈놀이 대사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더 컸다. 2010년 하회마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동시에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
이상호씨는 "세계무형문화유산 중 우리나라에 있는 것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도 그에 못지않게 전승할 가치가 있는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하회별신굿탈놀이' 인간문화재는 어떻게 되나?
보존회 회원이 되면 준회원으로 2년간 활동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준회원들은 공연을 보는 게 곧 연습이다. 대사를 숙지하게 되고 춤사위를 익히게 된다는 것. 1년 후 평가를 받게 되며 기예가 모자라면 정회원이 되지 못한다. 정회원이 되면 악사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정회원에게는 5년 동안 '전수자'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5년 동안 공연과 관련한 기예를 전수받아 '적정한 수준'이라는 판단을 받게되면 '이수자'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수자 중 문화재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조교를 선발한다. 현재 조교는 4명. 문화재위원회는 조교 중에서 다시 인간문화재를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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