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봄처럼 아늑한 내방 갖고 싶어

태어나서 세번의 이사를 한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릴 때, 그리고 겨우 말귀를 알아먹을 다섯살 때쯤, 세번째는 집이 시장 근처여서 상인들의 거센 소리와 밤낮으로 떠드는 소리에 시달리자 결국 부모님은 '맹모삼천지교'라며 가게와 떨어진 아파트를 구입하신 모양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동생과 나, 둘을 유치원 소풍에 보내고선 이사를 한 모양이다. 밤늦게 돌아오니 가게에 아무도 없어 난 어쩔 수 없이 울며 동생과 유치원에 다시 갔다. 선생님의 전화 연락에 부모님은 당황하셨는지 우선 아이들을 무조건 아파트로 데려 달라 하신 모양이다. 우린 영문도 모른 채 처음 와 본 낯선 곳에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너무나 크고(?) 깨끗한 집은 모든 게 새로 산 가구며 최신형 전자 제품, 처음 가져 본 침대라 우린 신이 나서 가슴까지 벅찼다. 엄마는 며칠 밤잠을 설쳐 가며 집안 정돈을 하고 외가댁 식구랑 큰집 식구들을 모아 난생 처음 집들이를 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금 14년째 그냥 이 집에 산다. 그때 산 가구며 전자 제품은 구닥다리가 되었고 고장 난 전자 제품은 수시로 애프터서비스를 받느라 몸살을 한다. 한개밖에 없는 화장실은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해 기다려야 하며 잠 많고 게으른 나는 항상 꼴찌다. 급한 나머지 대충 하고 나가기는 하지만 심지어는 큰 볼일 참다 변비까지 생겼다. 내일 입고 갈 옷이며 챙겨 놓은 신발, 가방은 얌체 같은 새침한 언니가 홀라당 챙겨 가 버리지, 앞머리 드라이기 좀 사용할라치면 멋내기 일등인 남동생이 30분째 들고 놔주질 않지, 도무지 이놈의 둘째는 특권이 없다. 정말 골난다.

얼마 전, 대궐 같은 이모네 집들이에 입이 딱 벌어졌다. 식구 넷에 방이 네 개, 운동장 같은 거실 다 때려 치우고 화장실이 무려 3개다. 아! 나도 봄내음 나는 내 방 하나 갖고 예쁘고 아늑한 침구 꾸며 살포시 공주처럼 지내고 싶다. 언제 꿈 같은 새봄 나들이할 수 있을지.

서예진(대구 달서구 신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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