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호의 시사 코멘트] 급물살 타는 대학 구조조정

대학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단단히 고삐를 죌 모양이다. 교육개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 입시와 구조조정, 국립대 법인화 등의 업무를 한 군데로 모으는 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부실 사학 퇴출 방안을 포함한 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3월 중에 발표하겠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와 청와대 등 정부 관련 기관에서는 '10% 퇴출'이라는 사립대 통폐합의 큰 틀에 의견을 모으고, 교과부 관계자와 변호사 회계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심의기구를 만든다고 한다. 이 심의기구에서는 퇴출이나 통폐합 대상 사립대를 판단하는 심사기준을 만들게 되는데, 심사 기준은 재단의 비리 유무와 학사운영 현황, 학생수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면 앞으로 대학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이는데, 전하는 내용만으로는 과거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지난 정부에서도 대학 구조조정은 발등의 불이라고 하면서 여러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결국 지지부진했다. 가야 할 길은 분명히 보이는데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대학이나 정부 모두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고 손을 놓고 만 형국이 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 문제는 '대한민국은 대학의 덫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할 대학이 오히려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 난립으로 인한 고등교육의 질 하락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졸업생 양산으로 인한 일자리 미스매칭의 심화는 청년실업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1970년 87개의 4년제 대학이 1987년에는 120개로 늘었고 2004년에는 200개가 되었으며, 지금은 250개가량으로 전문대까지 포함하면 400개가 넘는다. 30년 전만 해도 30%에 미치지 못했던 대학 진학률은 2008년 기준으로 83.8%에 이르고 있다. 세계 주요국가의 대학 현황과 비교해 볼 때 고등교육의 질은 최하위권이면서 인구비례로 가장 많은 대학생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미달 사태는 우리나라 대학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이미 대학 지원자가 정원에 미달한 지는 여러 해가 되었고, 우수인력의 수도권 집중현상 심화에 따라 지방 명문대조차 정원미달 사태를 빚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국'공립대의 3분의 1가량이 정원미달 사태를 맞고 있으니 지방 사립대의 경우야 더 말할 게 없을 것이다.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지방 사립대와 비인기 학과 교수들의 경우 연구와 교육에 전념해야 할 때 입시 홍보에 직접 나선 지 오래고, 신입생 유치를 위해서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는 대학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악순환의 꼬리를 물 수밖에 없고 그 악순환의 지속은 대학 지원자수가 20여만명 가까이 줄어들 10여년 뒤를 대비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이미 정보공시제나 자체평가 공개 등을 통해 교육 수요자들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패턴이 자리 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학력 인플레이션과 지방 사립대의 미충원 사태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국가적으로 어떤 손실을 가져올지는 자명한 일이고, 난립해 있는 대학의 수를 줄여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겠다는 정부의 방침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모두 지방 사립대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인 것도 사실이고, 정부가 직접 통폐합이나 퇴출 대상 대학 명단을 작성해 발표하는 것도 왠지 꺼려진다.

지방의 모든 사립대가 정부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학의 특성화나 우수교원 확보, 교육연구 기반시설의 확충, 학과 구조조정 등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자구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통폐합도 좋고 퇴출도 좋지만 지방 사립대가 자구노력만으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대구한의대 중어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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