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몰래 야구보는 재미 짜릿" WBC 열기속 직장인들 백태

한국 야구대표팀이 선전하면서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는 전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대부분 경기가 오전과 점심시간대에 열리는 바람에 직장인들은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상사 눈치와 경기 시청을 사이에 두고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TV를 볼 수 없어 인터넷, 위성DMB, 휴대폰 문자, 인터넷 메신저 등 첨단기기들을 활용하는 이들도 많다. 직장인들의 가슴 졸이는 WBC 시청기를 살펴봤다.

◆그래도 본다…

직장인 정모(34)씨는 20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조마조마하게 보냈다. 한쪽 눈은 동영상 중계 인터넷 사이트의 화면 속으로, 다른 쪽 눈은 직장 상사를 살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점심시간에 경기가 열리면 구내식당에 죽치고 앉아 평소엔 10분이면 해결될 식사를 1시간 이상씩 했다"며 "일도 중요하지만 야구대표팀을 응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회사원 최인열(38)씨는 이날 한·일전을 라디오로 들었다. 한쪽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한 손으로 막은 채 있느라 힘들었다는 그는 "급박한 순간에는 터져 나오는 함성을 애써 참아야 했지만 직장 상사 몰래 야구를 즐기는 짜릿함만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은행에 근무하는 김상혁(33)씨는 지난 18일 낮 12시에 열렸던 WBC2라운드 한·일전을 보기 위해 회사 인근을 다 뒤졌다. 결국 찾은 곳은 커피숍. 김씨는 점심도 거른 채 커피 한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놓고 한쪽에 내걸린 대형 TV를 봤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김모(28)씨도 경기가 있는 날엔 항상 영업상 이유를 핑계대고 병원을 찾는다. 병원 휴게실에서 느긋하게 경기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외근직이 이때만큼 좋은 적이 없다"고 했다.

◆TV가 없어도 본다…

회사원 송모(34)씨는 인터넷 한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문자중계 서비스로 이날 경기를 지켜봤다. 비록 경기는 볼 수 없었지만 문자로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야구광팬인 직장인 한모(32)씨는 아내가 보내주는 문자로 경기 소식을 듣고 있다. 한씨는 "차라리 새벽 경기라면 일찍 일어나서 보기라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어 아내에게 TV를 보다 중요한 상황에 문자를 보내라고 했다"며 "비록 저녁에 설거지를 대신 해야 하지만 안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전모(33)씨는 친구까지 동원했다. 그나마 TV를 볼 수 있는 친구와 인터넷 메신저로 경기 내용을 상세하게 중계받았다. 그는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현실적으로 TV 시청이 어렵기 때문에 머리를 짜낸 것이 친구들과의 메신저 중계였다"고 했다.

직장인 차진혁(29)씨는 WBC를 보기 위해 위성DMB를 장만했다. 유료 중계지만 그래도 영상을 볼 수 없으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보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차씨는 "이런저런 걱정 안하게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WBC 경기가 열렸으면 좋겠고 이번에 우승했으면 더더욱 좋겠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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