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시각인지불능증

연세가 65세인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외래진료실에 오셨다. 약 2주 전부터 보이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갑자기 헛소리를 하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할머니가 덧붙였다. 진찰을 해보니 좌측 반쪽을 보지 못한다. 정면을 보도록 하고 좌측에서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알지 못한다. 좌측 동측성 반맹증(半盲症)이 생긴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우측 후두엽 병변이다.

MRI 사진촬영을 해 보니 역시 우측 후두엽에 뇌경색 소견이 관찰되었다. 혈소판 응집 억제제를 투여하고 치료했다. 시야 결손은 약간 호전되었으나 어떤 장소에 가려면 옛날 갔던 가까운 길을 알지 못하고 돌아서 가야 한다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시각 중추인 후두엽 시각피질(視覺皮質)뿐만 아니라 그 곁에 붙어 있는 시각연합피질(視覺聯合皮質)도 손상된 것이다.

올리버스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책이 있다. 환자는 아내 머리를 모자로 착각하고 아내 머리를 자꾸 잡아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한다. 환자가 그리던 그림도 사실적 사물화에서 추상화로 변한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환자와 같이 좌측 반을 보지 못한다. 우측 시각 피질과 시각 연합 피질에 병변이 생겨서 좌측 동측성 반맹증이 발생하고 명각시각인지불능증(明覺視覺認知不能症·apperceptive visual agnosia)이 생긴 것이다. 이들에게 '원'이나 '사각형' 을 보여주면서 이름을 쓰라고 하면 정확하게 '원' '사각형'이라고 쓴다. 그러나 똑같이 그리라고 하면 추상화같이 선만 왔다 갔다 한다. 이들은 또한 사물을 전체로 보지 못하고 하나하나 단절해서 본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환자는 장갑을 "표면이 단절되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주름이 잡혀있고 주머니가 다섯 개 달려있다"고 단절해서 설명을 한다. 세세한 특징은 자세하게 기술하나 전체적으로 장갑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 언급한 내 환자는 각각의 건물과 길은 잘 아나 건물과 길과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목적지에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이다.

나는 요즈음 한번씩 우리들이 자꾸만 명각시각인지불능증 환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가 전문화로 점점 잘게 쪼개져감으로써, 잘라진 조그만 분야는 매우 잘 아나 전체를 엮어 판단하는 능력이 점점 부족해지고, 전체를 보지 못하고 국소만 보는 그런 사회로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임만빈(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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