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56)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은 지난해 통계청장에서 강등(?)됐다. 통계청장이 차관급이라면 경영지원본부장은 1급에 해당된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승진과 보직이 공직 사회의 전부인데 밝은 이유가 궁금했다.
이 본부장은 "인생을 길게 보면된다"고 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기 때문에 앞으로는 'one job' 세대가 끝난다. 언제든지 다른 직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질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제일 경계할 것이 직급을 따지는 일이란다. 그는 "인생의 최고 정점에 있을 때 억지로 자리를 계속 연장하려고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며 "정점에서 내려가는 삶에 대한 적응을 빨리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한국거래소로 옮기면서 직급과 비교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우선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실물 경제엔 어둡던 그가 금융을 알게됐다. 때문에 또래의 사회인들에 비해 경쟁력이 생겼다고 자부한다.
'강등'을 통해 소중히 얻은 것은 무엇보다 가족의 건강이다. 최근 거래소에서 실시하는 부부동반 정기 건강검진에서 부인의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었다. 밤낮없이 일하던 경제기획원 생활이었다면 부인의 암 발견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듯 직급 강등은 이 본부장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준 셈이 됐다. 그는 "사고를 달리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했다. 현재의 금융 위기와 관련해서도 조급하게 기존의 성장 논리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종 접대 등 돈을 잘 쓰고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수입자율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물가가 높다. 여기에 제조업이 탄탄히 뒷받침되지 못했을 뿐아니라 노조 시스템은 너무 앞선 선진국형이 자리잡아 인건비도 비싼 편이다. 금융 위기 대응에 근본적으로 부실한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으로선 아끼고 저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는 "잘 살려면 못 사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경제학 모델은 자신의 어머니이다. 모친이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지문이 닳고닳아 십 수번을 다시 찍어야 했단다. 그 정도로 노모는 평생 일에만 매달렸고 없는 살림을 위해 아끼고 또 아꼈다. 먹고 살만한 지금은, 주말이면 모친을 모시고 김천 등 5일장을 주로 찾는다. 줄곧 다리가 아프시다더니 장터에만 도착하면 눈빛이 살아 난다고 한다. "어머니는 원래 돈 쓰기를 싫어하신 게 아니었습니다. 아끼기 위해 소비 욕구를 감춰둔 것이지요. 한국도 조금 더 잘 살때까지 지문이 닳도록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본부장은 교편을 잡은 부친 덕분에 자주 이사를 다녀 대구 수창→포항→성주 등 초등학교 세 곳을 다녔다. 부친의 고향은 성주지만 이 본부장은 대구에서 태어났고, 중학교부터는 서울에서 주로 자랐다. 성주에 최근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전국에서 티켓다방이 가장 많은 곳이란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지조와 절개있는 양반 도시의 면모가 점점 퇴색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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