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사람은 제주로 말은 서울로'

편중 인재등용 폐해 역사가 증명, 지방 인재 적재적소 활용 바람직

말(馬)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내라는 말도 時俗(시속)이 변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막연히 한양(서울)으로 보내라는 말보다는 한양으로 보내되 반드시 명문대학교나 로스쿨, 의대로 보내라는 구체적인 조건이 붙는 세상이 됐다.

20년 전 군사정권 시절 국회의원 숫자를 뒤져 보면 대한민국에 인물은 서울대, 육사 출신밖에 없는가 하고 착각되리 만큼 압도적인 숫자를 보인 적이 있다. 20년 전 군사정권 시절 재적의원 275명 중 서울대(대학원 포함) 출신 의원이 112명에다 육사 등 군 출신을 포함하면 절반이 넘었다. 그런 현상을 두고 당시 언론은 서울대와 육사 등을 '한국 엘리트의 대표적 양성 기관'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엘리트의 개념을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이란 '벼슬자리'에 맞춘 초점과 시각이 너무 속물적인 점이 없잖지만 당시엔 대한민국이 장관, 국회의원들에 의해 움직여지다시피 돌아간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부패나 독직 등으로 엘리트답다거나 소신 있고 사명감 있는 장관이란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속칭 특정 대학이나 집단 출신의 인재 편중은 부정적 폐해도 컸던 셈이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특정 분야에 서울대 출신이 90%를 넘는다며 편중 현상을 부정적으로 지적, 지방 인재의 활용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적이 아니라도 우리 역사 속의 인물 등용 제도와 지도계급의 양성 시스템을 살펴봐도 학맥과 계파 중심 인재 등용의 불균형 폐해는 국력을 쇠퇴시키는 요인이 됨을 보여준다.

고려 때 武臣(무신)정변에 의해 무신들이 집권했을 당시 武官(무관) 출신만 우선 채용함으로써 文臣(문신) 계열은 똑같이 과거에 급제하고도 10년이 넘어도 등용이 되지 않아 취직자리를 구하는 求官(구관) 상소문을 올린 기록이 있었을 정도였다. 반대로 문신 우위 체제 분위기였던 조선시대에는 같은 장원을 해도 武科(무과) 장원에게는 차별을 두어 사실상 양반 자제들은 무과 응시를 외면, 무과 쪽은 글자도 제대로 모르는 시정잡배들까지 응시할 만큼 질 저하를 초래했다.

그러자 세조 때는 경진년에 무과를 특설하여 한꺼번에 1천800명이나 뽑는 바람에 개중엔 말도 못 타는 인물까지 무관으로 뽑혔다. 그 후 '경진년 무과'(말 못 타고 활 못 쏘는 무관)란 별명까지 유행했다. 그러자 자질 있는 인재는 더더욱 무과 지원을 기피, 무반 계열 인물수준이 떨어지면서 약체화됐고 그 결과 임진 왜란 등 武(무)를 경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집권층의 정치적 의도나 政派(정파)의 코드에 따라 인재 등용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됐었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그 후 수백 년이 지난 5共(공) 당시까지도 전체 각료 중 서울대 장관 14명에 군 출신 장관 5명이란 기형적 등용 분포는 軍政(군정)이라 그렇다 치자. 그러나 명문대나 코드 인맥의 인재 쏠림이 젊은 입시생들에게 출세 지향적 사고를 심어주고 非(비) 명문대 인재들에게는 배타적 상실감만 증폭시키는 폐해는 아직도 여전하다. MB정권 역시 인재 등용을 특정 인맥에서 뽑다 보니 어제 또 목사 출신 전 청와대비서관이 부패로 구속되는 전철을 밟았다. 편중인사는 국가와 교육계의 공동 과제이면서 동시에 이 대통령 자신의 숙제인 셈이다.

토정비결을 썼던 이지함 선생은 萬言疏(만언소)에서 '海東靑(해동청)은 천하에 둘도 없는 좋은 매이지만 새벽을 알리는 일에는 늙은 닭만 못하고 하루 천 리를 달린다는 汗血駒(한혈구)는 천하의 좋은 말이지만 쥐를 잡는 데는 늙은 고양이만 못하다'며 소질에 따른 적재적소 기용의 중요성을 지적했었다.

역사 교훈과 성현의 충고, 대통령의 걱정이 아니라도 창의성과 다양화가 요구되는 글로벌시대에 지나친 명문대 선호나 엘리트주의, 지역주의, 코드 중심의 사람 쓰기는 분명 좋은 인재 등용법이 못 된다. 말을 서울 보내고 사람은 제주에 보내도 되더라는 역발상이 요구되는 시대다.

金 廷 吉(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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