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학부모 생각] 냉정과 열정 사이

유난히도 외래 환자가 많았던 월요일.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별일 없었어?"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질문인데다 아이의 목소리에서 극도로 감정을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답은 하지 않고 "너는 괜찮으냐"고 물으니 어깨뼈가 부러져서 원주에 있는 정형외과에 가서 치료받고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왼쪽 쇄골 중간이 부러져 뼈가 튀어나와서 그곳 의사선생님이 손으로 꽉꽉 눌러서 제자리에 밀어 넣고는 탄력붕대를 감아주며 다음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뼈를 제자리로 밀어 넣고 사진을 찍어서 확인을 해 보고 싶다"며 "혹시 어긋나서 어깨가 비뚤게 붙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너무 가슴이 저려 "많이 아프지 않니? 저녁은 먹었니?" 하고 물으니 "참을 만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고인데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겨울 방학 동안 축구를 하지 못하다가 개학 후 첫 수업시간에 축구를 하게 돼 무리를 했던 모양이다. 전력으로 질주하며 공을 몰아 골대로 향하는 순간 아이들과 부딪히며 중심을 잃고 넘어졌었나 보다. 아직도 차디찬 강원도의 칼바람과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언 땅 위에 체중을 실어 넘어졌으니 오죽했으랴.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내 목소리도 떨려서 아이가 더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그 정도는 괜찮아. 무슨 큰일인 줄 알고 괜히 걱정했잖아. 쇄골은 신생아들도 분만 중 간혹 보는 골절이니 걱정 말라'고 위로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동료 정형외과 선생님께서 X-선 사진을 한번 봤으면 한다"고 했다. 사정을 얘기하니 마침 원주의 선생님도 흔쾌히 그 사진을 디카로 찍어서 파일로 전송해 주셨다. 그러는 사이 남편은 벌써 아이한테로 가는 중이었다. 왕복 500㎞의 밤길. 밤에 데려와서 사진을 찍어보고 집에 오니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눈을 붙이면서 아이는 4시에 꼭 깨워달라고 했다. 아침에 꼭 해야 할 수업이 있으니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 부탁도 있었지만 너무 애처로워 앉아서 새벽까지 지켜봤다. 4시쯤 아이를 깨우니 벌떡 일어나서 학교로 향했다.

남편은 몇 시간 사이에 밤길을 1천㎞를 운전해야 했지만 아이가 대견하다고 했다. 나 역시 다친 상황에서도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들어 대견했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냉정을 찾으면서도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만은 식지 않고 나아가는 씩씩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아이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라'는 간절함과 더불어. 정명희(민사고 2년 송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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