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꿈을 보았다/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유은경 옮김/향연 펴냄
'그 산에 산적 하나가 살기 시작했다. 그는 산길을 가는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았다.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는 아내로 삼았다. 그래서 처음엔 하나였던 아내가 곧 여덟명으로 불어났다. 여덟 번째 아내가 된 여자는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오늘부터 너는 내 마누라야"라고 말하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적이 여자를 데리고 소굴로 돌아가려 할 때 여자는 "힘이 없으니 업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업어주었다. 오르막길에 닿았을 때 산적은 "여기서부터는 위험하니 내려서 걸어가자"고 했다. 여자는 "싫어! 너 같은 산 사내가 힘들 정도로 심한 오르막을 내가 어떻게 걸어가?"라고 답했다. 그 말은 옳아 보였다. 산적은 여자를 업고 갔다.
여자는 아름다운 옷과 깨끗한 물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머리통을 좋아했다. 죽여서 베어온 머리통을 갖고 놀며, 머리통끼리 싸움도 시키고 사랑도 하게 했다. 찐득찐득해진 머리통의 살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버리고 새 머리통을 요구했다. 산적은 아내의 요구에 충실히 따랐다. 머리통을 구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 일도 심드렁해졌다.'
1947년에 쓰인 사카구치 안고의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라는 작품으로 그로테스크의 극치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틀림없이 있었을 법하면서도 이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사실 이 작품은 산적과 그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벚꽃 나무 아래 깃든 기묘한 기운, 그러니까 기묘한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집 '이런 꿈을 보았다'에는 위 작품 외에 일본 근대 작가들의 작품 중 환상적인 요소가 담긴 6편의 중단편이 묶여 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 나쓰메 소세키의 '여름 밤의 꿈',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집'을 비롯해 모리 오가이의 '쥐 고개', 고다 로한의 '풍류불' 등이다. '쥐 고개'와 '풍류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다는 점에서 여섯 작품은 공통점을 가지지만 작가들의 성향에 따라 다른 재미를 준다. 워낙 대작가들의 글인데다 문학적인 맛을 충분히 살린 번역은 명작의 향기를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짧지만 기상천외한 이야기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는 추한 인간의 에고이즘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한 불상 조각가의 애달픈 사랑의 승화 과정을 그린 고다 로한의 '풍류불'은 고풍스러운 문체와 위트가 눈에 띈다.
이 책에 묶인 여섯 편의 소설은 현대 일본 소설과는 무척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국내에 소개된 현대 일본 소설에 흥미를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한 세대 혹은 두 세대 앞서 살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비교해보는 기회가 될 듯 하다. 특히 근대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서사가 풍부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현대 소설과도 차이가 많다. 일단 근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 독특하고 다양한 분위기가 배경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책 '이런 꿈을 보았다'는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들에 대한 소개와 주석도 자세히 달아놓았다. 222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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