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에 대해서 논했는데, 정말로 일본인들은 여간해서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인고의 역사 속에서 터득하고 감각적으로 익힌 생활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다.
매사를 참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대 일본인들은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언어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 '응'(ん)이란 언어 구조다.
그래서 일본어는 말의 마지막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그것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이쪽인지 저쪽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있나, 없나'를 알아볼 때의 우리말은 '있습니다, 없습니다'로 말의 끝까지 안가도 '있, 없'으로 그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일본어라면 '아리마스'(あります) '아리마센'(ありません)으로 그 말의 종착역인 '스'(す) '센'(せん)까지 가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인과 결혼을 한 어느 한국여성이 있는데 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20년을 넘게 살아온 자기 남편의 속마음이 지금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고 자식이 다 컸는데도 늘 보면 어제 만난 사람 같다는 것이다. 깊은 속을 안 주고 항상 약점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남편을 보면서 때때로 '혼자'라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친구들이 남편과 싸웠다느니 하는 투정을 들을 때면 그것이 너무 부러워지기까지 한다고 한다.
정말 그러고 보면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다. 좀 친해지면 뱃속까지 다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를 다 얘기한다. 애초부터 솔직하고 뒤가 없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러니 부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정말 부부 사이에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요즘 일본에서 유행하는 '정년 이혼'이니 '젖은 낙엽'이니 하는 말들은 현대이기 때문보다는 일본인의 성격에서 오는 경향이 더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사이가 나빴던 부부라 할지라도 혹시 남편이 아프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이런 남자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랴"하고 죽을 때까지 극진히 간호해 준다. 어쨌든 사람이 살면서 '정'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좀 못 살아도 서로 정 주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러려면 좋은 점만 보이려 노력하지 말고, 자기의 약점도 솔직히 들어내 보이자. 그래야 상대방이 아픈 부분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주면서 위로해 줄 게 아닌가.
나는 일본인들의 삶이 일본어의 '응'(ん)의 구조를 만들고, 그 궁극점에 일본인의 정신 구조인 '혼네'와 '다테마에'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경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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