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다' '-스럽다' 만큼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성질이나 특성을 나타내는 접미사이지만 요즘에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놈현(노무현)스럽다' '(이)명박답다'는 속어 영향이 아닐까 싶다.
'대구답다'는 말도 그렇다. 타지역 사람들이 대구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보수골통의 원조, 패거리 문화, 폐쇄적인 사고 같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뉘앙스를 잔뜩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고담(Gotham)대구'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고담은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범죄 많은 도시인데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는 대구를 비꼬는 말이다. 설령 철없는(?) 사람들의 말장난이라 하더라도 대구 사람으로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외부의 편견을 탓하기보다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훨씬 더 많다. 우리들이 '대구다운' 대구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고민을 해왔는지 의문스럽다. 대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나 개성을 찾지도 않았고 타지역 사람들이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요즘도 여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훨씬 더 많다.
얼마 전 서울에서 온 한 교수는 대구를 둘러보고 이런 말을 했다. "쇠퇴하는 도시가 갖고 있는 요소를 모두 갖고 있네요." 지역 경기 침체와 상권 몰락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열악한 주거환경과 볼거리 없는 문화'관광 콘텐츠, 차량위주의 교통정책 등은 시민들의 행복권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이라고 했다. 종래 해오던 것만 답습하는 대구시 행정이 과연 대구다운 것일까.
한 유명 건축가는 우연히 수성구 황금동 아파트단지에 갔다가 혀를 찼다. 아파트들이 그렇게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형태로 서 있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높다란 아파트들이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우뚝 버티고 있는 모습에서 대구사람들의 이미지를 새삼 떠올리게 됐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우리가 선호하는 크고 웅장한 아파트들이 과연 대구다운 것일까.
수성못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 필자에게 이런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경치좋은 곳에 그렇게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는데 어쩌면 그렇게 멋없이 지을 수가 있느냐?" 빽빽한 밀집형 규모에 美(미)적인 고려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건물이라고 했다. 속내를 뜯어보면 대구시 도시계획 조례 때문이다. 고층을 짓지 못하게 하다보니 이상한 형태의 아파트밖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공무원들이 업자에게 돈을 한푼도 먹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아파트"라고 비꼬기도 한다. 공무원들의 딱딱한 사고가 과연 대구다운 것일까.
이런 사례들만 있다면 아예 희망이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대구시와 중구청이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도심 재창조 사업 하나 만큼은 큰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다른 도시들이 갖지 못한 도심의 역사와 전통성을 되살리면 대구만의 특질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도심 일대에 널려있는 골목길, 주택, 도로 하나하나가 바로 초일류 상품이다. 그곳에는 이야기가 있고 사람사는 향기가 배어있다. 400년 역사의 경상감영을 복원하고 대구읍성을 제대로만 부활시켜도 대구의 이미지는 단번에 바뀔 수 있다. 도심을 잘 꾸미고 가꾸어간다면 '폐쇄성과 보수의 도시'에서 '전통과 문화의 도시'로의 변신은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사업만큼은 의욕적으로 챙기고 있는 김범일 대구시장과 윤순영 중구청장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대구답다'는 말을 들으면 자부심을 느낄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박병선 사회1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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