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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의 펀펀야구] 시련이 다듬어 낸 '포커 페이스' 백정현

포커 페이스란 인간에게 그저 얻어지는 산물이 아니다. 간지럼을 견디지 못하듯 감정도 조절해서 참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동치는 내면과의 긴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든 침전물인지도 모르고 감정의 끝자락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만사의 귀결에 익숙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지 3년째 접어드는 신인이지만 실생활에서는 마운드의 돌부처로 불리는 오승환보다 더 '포커 페이스'로 느껴지는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좌완 투수 백정현이다. 평소 별 말없이 과묵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철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다 취미 생활조차도 유별나게 정적(靜的)이기 때문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요즘도 이따금씩 만화를 그리기도 하고 타고난 손재주로 모형 부품 조립에 몇 시간씩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진짜 프로야구 선수인지 의심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해체된 성광중 야구부의 마지막 일원이었던 백정현은 중 3이 되어서야 투수로 자질을 선보였던 미지의 선수였다. 한 손아귀에 쥐어질 것 같은 가지같은 몸매였지만 상원고로 진학하면서 근육도 붙고 체격이 나아져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고 3때 기아 타이거즈의 지명이 유력했으나 유급을 하면서 무산이 됐다.

그리고 그해 겨울 동계훈련 중에 설상가상으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졸업 때까지 아예 마운드에 설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에 엄청난 부상을 당한 백정현은 절뚝거리면서도 오직 재활 훈련에 매달렸고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그가 더욱 말이 없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의 백정현은 높은 곳을 좋아해 날렵한 몸놀림으로 지붕을 타거나 주차된 차량 위를 뛰어다니며 노는 못말리는 개구쟁이였다. 그러나 새시 공장을 하면서 부유했던 집안이 부도로 가세가 기울면서 말수가 차츰 적어졌고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늦도록 분식점을 하면서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린 그가 체득한 것은 인내였다.

그리고 한번도 투정을 부리거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에 한번쯤 야구가 지겨워질 만도 하고 호기심 많은 친구들과 어울릴 법도 한데 철저히 차단한 채 오직 자신의 세계를 지켜 나갔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힘든 운동 생활을 견디면서 조금씩 그는 철든 청년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년 가까운 재활 기간은 스스로를 다잡아 포커 페이스로 거듭나게 한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무릎 부상 소식이 전해지자 스카우터의 반응은 차갑게 돌아섰다. 그러나 야구를 향한 외길의 열정과 함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삼성 라이온즈가 그를 2차 1번에 지명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포커 페이스의 진정한 위력은 굳은 심지 속에 있다. 금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또 다른 철가면이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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