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안중근 의사 殉國 99주기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殉國(순국)한 지 99주기가 되는 날이다. 1909년 10월 26일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한 안 의사는 144일 동안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 이듬해 3월 26일 순국했다. 서른 두 살의 짧고 뜨거운 삶이었다.

의거 100년, 순국 99주기에 되새겨 보는 안 의사의 삶과 정신은 후세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안 의사는 나의 행동은 오직 동양의 평화를 도모하는 성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에서 안 의사는 동양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평화회의 조직, 공동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군 설립까지 구상했다. 동양 평화를 모색한 국제평화주의자로서 '열린 민족주의'를 추구한 것이다.

안 의사가 주창한 동북아 평화와 공동체 정신은 1세기가 흐른 지금도 유효하다. 지금 논의가 활발한 동북아 평화체제를 100년 전 안 의사는 구상하고 실천방법까지 제시했다. 유럽 통합 제안보다 35년이나 앞서 동북아 공동체를 제안했다는 역사적 혜안도 있다. 특히 제국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일본이 보수 강경파 득세로 갈수록 우경화하고, 중국이 패권주의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살아있는 가르침이다. '하얼빈의 총소리는 평화의 총소리'인 것이다.

형장으로 떠나기 전 안 의사는 '爲國獻身 軍人本分(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란 글을 남겼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하자 자기를 희생하면서 독립을 성취하려고 혼신을 다한 것이 안 의사의 삶이었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를 맞은 지금, 안 의사의 숭고한 삶과 정신에 비추어 국민 각자 본분을 다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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