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미정의 별의 별이야기]7집으로 돌아온 박정현

가수 박정현(33)은 자신의 노래만큼이나 청량하다. 데뷔 11년차의 연륜에도 신인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빡빡한 스케줄과 뮤지션이라는 직업이 주는 중압감도 남들 얘기다. 데뷔 후 그녀에게는 그 흔한 스캔들도 하나 없었다. 오랜 공백을 가진 적도 없다. 꾸준히 음반을 냈고, 꾸준히 활동을 했고, 꾸준히 팬들과 만났다. 그게 '리나 박'(Lena Park, 박정현의 미국 이름) 스타일이다.

박정현의 7집 '10 웨이즈 투 세이 아이 러브 유'(10 ways to say I love you)가 나왔다. 2007년 12월 6집을 발표한 데 이어 1년 반만의 신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간격을 뒀다. 박정현답다.

"6집은 제가 다 프로듀싱을 해서 만들었어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자는 마음이었죠. 사실 그 때 좀 외로웠어요. 6집은 제 욕심대로 만들었으니까 7집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듣고 트렌드를 좇았습니다."

앨범의 프로듀서는 오랫동안 박정현과 함께 작업을 해 온 작곡가 황성제가 맡았다. 황성제는 '치카치카'와 '청순가련 리나박' 등 노래도 작곡했다. 타이틀곡 '비밀'은 미디엄 템포 발라드곡의 귀재인 조영수가 썼다.

"조영수 작곡가가 어떤 노래를 작곡해 줄지 저도 참 궁금했어요. 그런데 나온 노래를 보니 전형적인 조영수 작곡가 스타일이 아닌, 화려하고 웅장한 스타일의 노래인 거예요. 노래가 마음에 쏙 들어 타이틀곡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룹 '러브홀릭'의 강현민은 모던 록 느낌의 노래 '사랑은 이게 아닌데'와 '만나러 가는 길'로 박정현 음악에 변주를 시도했다.

"평소 모던 록 장르의 노래를 좋아했지만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강현민씨와 함께 작업하게 돼 즐거웠죠."

박정현 자신도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 '비가' 등 노래를 직접 작사, 작곡했다. 특이한 것은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의 랩 피처링에 윤미래가 참여한 것이다. 여자의 노래엔 주로 남자 래퍼가 참여하는데 박정현은 실력파 여성 래퍼 윤미래와 호흡을 맞췄다."여자 랩이 들어가면 노래가 더 강력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자 래퍼 중에 최고라고 생각하는 윤미래 씨에게 부탁을 했죠. 그랬더니 흔쾌히 승낙을 해 준거예요. 윤미래씨 정말 기가 대단해요. 제가 눌려 있었다니까요. 제가 언니인데 미래 씨가 언니 같아요. 바빠서 작업할 때 많이 보진 못했지만 윤미래씨가 참여해줘서 더 좋은 노래가 됐어요. 참 고맙죠."

재미교포인 박정현은 데뷔 당시 자신의 앨범에 영어로 작사를 해 참여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어로 작사를 한다. 5집부터 시도했던 일이다. 아직까지 말을 하는 것은 영어가 더 편하지만 그렇다고 한국말이 불편하지도 않다.

"1996년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정말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말도 안 되고 문화도 잘 맞지 않고. 그런데 이제 미국에 가면 한국이 그리워요. 미국의 여느 도시 못지않게 서울은 세련되고 활기찬 도시예요. 오히려 아시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미국 친구들이 많아졌죠."

한국 가수들이 줄줄이 외국 시장에 진출하는 요즘이다. 박정현의 가창력과 언어 능력으로는 외국 시장 진출이 더 쉬울 것 같다. 그런데 박정현은 우직하게 한국에서만 팬들을 만나고 있다.

"미국에서 왔지만 전 왜 가수들이 무리해가면서 미국에서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미국은 정말 힘든 시장이고 동양인에게는 더욱 어려워요. 시도에 대해선 100% 응원을 하지만 전 별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전 미국에서 자랐지만 항상 '외국인'이었어요. 유명한 가수가 될 꿈은 꾸지 않았죠. 한계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대신 월트 디즈니사에서 성우가 되어 볼까 하는 꿈을 가졌죠. 얼굴이 안 보이니까 그건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박정현은 또 미국 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조근조근 전했다.

"요새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꼭 미국에서 인정을 받아야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요. 이젠 음악적으로도 미국이 뛰어날 게 없어요. 전 한국에서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었고, 자유롭게 내 음악을 했죠. 전 외국 시장에 대한 미련이 없어요."

이 명랑하고 솔직한 뮤지션은 이번 앨범 활동을 하며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할 생각이란다. 그녀 특유의 솔직 화법이라면 충분히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사랑을 받을 듯하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역시 수다떠는 것을 좋아하니까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아 문화적인 부분을 조금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어요. 이런 게 오히려 이질감을 줄까봐 걱정이 되긴 해요."

20대 초반 한국 가요계에 등장해 정통 R&B가 뭔지 여실히 보여준 박정현. 그녀는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넷의 중견 가수가 됐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있을 법도 하다.

"제 친구들은 다 결혼했어요. 정말 결혼 생각은 많아요. 부모님도 얘기를 많이 하시고요. 그런데 일단 사람이 있어야 결혼 생각을 하죠. 연애는 사실 몰래 몇 번 했어요."(웃음)

박정현은 그간 앨범 재킷에 사진을 유난히 많이 넣었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단 한 장의 사진만 썼다. 사진 얘기를 하다가 박정현이 1집 제작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를 말해줬다.

"1집 사진을 찍을 때 사진작가 안성진 씨의 신사동 집에서 촬영을 했어요. 그 집이 정말 예뻤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 목조 주택이라 나중에 불이 나버린 거예요. 안성진 씨의 집은 지금 1집 앨범 재킷 속에만 남아있어요."

과거 얘기를 하며 특유의 명랑함을 발산하는 박정현. 이 정도 토크 실력이라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충분히 큰 사랑을 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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