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정조가 쓴 편지 299통이 공개됐다. 왕의 것으로는 유례없이 많은 양의 편지다. 편지 내용과 겉봉의 낙관을 분석한 결과 학자 군주이자 성인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욕설과 유머를 즐겼던 왕임이 밝혀졌다. '보는 즉시 찢어버려라' '불에 태워라' 등의 내용으로 미뤄 비밀 편지임도 알려졌다. '참으로 호로자식'(眞胡種子) '주둥아리를 놀리려고 한다'(敢欲容喙)는 등의 거침없는 표현과 함께 '가가'(呵呵)라고 하는 껄껄과 '좋은 건더기'(好滓料) 등의 익살스런 표현 등을 서슴지 않는 다혈질의 정조가 잘 드러난다.
편지 겉봉에 쓰인 '단규개탁'(端揆開坼)은 '우의정은 열어보라'는 뜻이다. 또 삼청동(三淸洞)이라는 수신처도 보인다. 정조 당시 삼청동에 살았던 정승은 우의정 심환지(沈煥之). 그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찬성하고 개혁에 반대한 노론 벽파의 영수였다. 심환지는 바로 정조의 최대 정적이었던 것이다.
1799년 3월 정조는 자신의 즉위에 반대했던 화완옹주를 석방하려 한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는 완강했다. 우의정 심환지는 관을 벗고 대전 밖으로 나가며 강력히 항의했고, 정조는 "반열에서 나와서 강력히 아뢰고 즉시 뜰로 내려가 관을 벗고 견책을 청하라"며 그를 파직시킨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조의 각본에 따른 연출임을 밝히고 있다.
정조는 임금과 신하를 '물고기와 물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인 노론 벽파(僻派)의 심환지까지 포용하는 대통합의 정치를 추구했다.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즉 만개의 시내를 비추는 달이란 호로 표현하며 그렇게 되고자 했다.
정조가 죽기 13일 전에 보낸 마지막 편지. 그는 심환지에게 자신의 고통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1800년 4월 17일 보낸 편지 중에는 '귀의 뿌리와 이의 씨앗이 번갈아 통증을 일으키니, 그 고통을 어찌 형언하겠는가?'라는 내용도 담고 있다. 훗날 정조 죽음의 배후로 지목되는 그가 과연 정조를 독살했는가? 이에 대한 비밀을 KBS 1TV 역사추적 '정조는 왜 정적과 밀통했는가?'(28일 오후 9시 40분)에서 알아본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