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실향과 이산의 경험을 상징한 세계

지역 작가 회고전 / 대구문화예술회관 / ~29일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내던 전통 회화는 퇴조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새로 받아들인 서양의 유화와 예술 사조가 우리 근대미술사를 혼란과 시행착오의 난맥상에 빠뜨린 원인이 되었다. 달라진 재료와 기법에 대한 적용, 변화된 조형관의 해석 등으로 야기된 문제들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분단과 전쟁을 겪고 특정한 이념에 봉사하는 사회주의 미술을 채택한 북쪽은 서방의 자유주의 미술 이념을 표방한 남쪽과 분리돼 버렸다. 미국 주도의 후기 모더니즘 경향을 강하게 추종하게 된 우리 미술은 한때 누가 먼저 그쪽의 실천을 모방하고 받아들이느냐가 경쟁이던 것처럼 비치기도 했지만 이제 서구의 이론과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 우리 나름의 주제 의식과 방법의 구현이 평가의 핵심적인 사안이 되었다.

지역 최고 원로 화가의 한 분이신 신석필 선생과 전후 한국의 모더니즘 세대를 대표한다고 할 만한 이동진 선생의 회고전이 동시에 열려 자연스럽게 우리 근대 미술의 도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전시를 보게 되었다. 황해도 출신으로 해주와 평양에서 미술 수업 후 전쟁을 만나 월남한 신석필 선생은 이후 쭉 대구에서 활동해 오신 분이신데, 그 생애나 작품 세계 속에는 우리의 굴절된 근대사의 반영을 고스란히 안고 있어서 그 부분에 관한 조명과 기록은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었다. 전쟁 전까지 북쪽의 미술 환경과 이후 실향과 이산의 체험이 어떻게 한 예술가의 작품 속에 녹아 들어갔는지 풀어내고 해석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분단과 전쟁은 단순히 북쪽 미술의 경직화뿐만 아니라 우리 미술에도 큰 영향을 가져왔다. 구상 혹은 신구상, 사실주의와 추상주의라는 문제 외에도 그림의 주제나 소재 선택을 통해 드러나는 특수한 문화적 내용들, 개인의 예술관 형성 등에 미쳤을 영향들도 종합적으로 검토될 사안들이다.

구체적인 묘사가 아니더라도 단순한 형상이나 색감으로 이루어지는 화면상의 모든 요소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암시하는 상징적 성질을 띤다. 화가는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이나 이야기를 표현하고 전달한다. 그것이 주관적인 관념이든 객관적인 사물이나 사실에 관한 것이든 간에. 이런 태도의 대극점에는 순순한 추상이 있다. 어떤 대상도 상징하지 않고 오직 화면상의 조형적 구성이나 장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러나 순수한 조형적 질서를 중시하는 그림에도 대상의 암시가 전혀 없지 않지만, 대상의 상징을 위주로 하면서도 순수한 추상적 비례나 조화에 대한 관심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석필 선생의 작품들은 이런 식의 추상과 구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물과 자연의 모티프에 천착해 왔는데 그 어느 것에도 고향에 대한 추억과 실향민이란 존재감에 대한 자기 인식과 무관한 표현은 없는 듯하다. 다만 노경에 이르러 상징적인 형상과 색감을 선호하던 구상적 재현은 더욱 순수한 추상적 미가 주도하는 비구상, 비대상 세계로 감각의 승화가 더 활발하고 생명감이 높아진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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