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시향의 음이 달라졌다…취임 6개월 곽승 상임지휘자

마에스트로는 즐거워 보였다. 3시간의 긴장된 합주 연습을 마친 뒤였지만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소탈한 말투에선 단원들을 압도하던 카리스마 대신 온화함이 넘쳤다. "고맙습니다", "용기가 된다"를 거듭 말하는 거장은 겸손했다. "나를 기다려주는 교향악단이 있고, 대구시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지휘자로 꼽히는 곽승(67). 대구시립교향악단 지휘봉을 잡은 지 6개월을 맞은 곽승 시향상임지휘자를 만났다.

◆시향의 음(音)이 달라졌다

대구시향이 역대 최고 지휘자를 만났다는 말은 단원들 사이에서 먼저 나왔다. "음악에 있어서는 사정을 안 봐주십니다. 연주가 성에 안 차면 뒷자리 단원에 밀려납니다.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곽승 지휘자가 앞에 선 것만으로도 음이 달라진다고 했다. 막연한 경외감이 아니라 그의 실력이 그렇게 만들었다. 전체적인 하모니는 말할 것도 없이 세세한 활 쓰는 법부터 관악기 부는 법까지 코치한다. 베테랑 단원들도 정신이 번쩍 든다. 정우균 악장은 "나쁜 지휘자는 있어도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곽승 지휘자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대구시향은) 원래 저력이 있는 오케스트라인데, 잘 다듬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예상했던 것보다 단원들이 빨리 따라와 준 건 그들의 윌(will·의지)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입니다." 대구시향은 1996년부터 10년간 세 명의 외국인 지휘자를 맞았지만 요즘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대구시향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곽승 효과'라고 했다.

'곽승은 엄격하다?'는 설에 대해 그는 엄격하지 않은 지휘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철저한 연습은 단원들의 의무다. "'아트'라는 것이 철저한 훈련과 기술이 바탕이 돼야 꽃봉오리를 피웁니다. 한 사람의 소리가 모여 100명의 소리가 됩니다. 어려운 악절은 집에서라도 연습해오는 성심(誠心)이 필요합니다."

단원에 대한 그의 신뢰는 단원들의 그것만큼이나 두텁다. 그는 오는 31일 대구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시향 정기연주회와 다음달 7일 열리는 2009교향악축제 피날레 곡으로 베토벤 5번 '운명'을 연주한다. 누구나 다 아는 곡을 레퍼토리로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이 교향악단이면 되겠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곽 지휘자는 대구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큰 용기가 된다고 했다. 시의 지원으로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강당은 개관 20년만에 새 음향반사판을 제작중이고, 첼리스타, 챔발로, 튜바, 콘트라베이스 등 5대의 악기를 새로 구입할 수 있었다. 취임 6개월 만에 '행정도 잘 하는 지휘자'라는 단원들의 신망을 얻게 된 데는 이런 지원을 이끌어낸 그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대구시향 창단 40년이 넘도록 해외 연주를 한 번도 못 했습니다. 조만간 꼭 성사됐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나는 경상도 사람

클래식은 '□'다? 곽 지휘자는 '고급 아트'라고 했다. "문학으로 따지면 세익스피어의 희곡이나 괴테의 파우스트 같은 겁니다." 클래식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자부심은 그의 음악 인생과 맞닿아 있다. 한 평생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이 그를 사랑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곽승은 6·25전쟁이 터지자 가족과 함께 대구로 피난왔다. 만경관 뒤편에서 살면서 인근의 초등학교에서 5학년까지 3년간 다녔다. "당시에 소풍갔던 동촌이나 앞산공원, 칠성 굴다리가 눈에 선합니다." 경기고등학교를 나온 선친은 만돌린과 하모니카를 곧잘 연주하는 멋쟁이였다. 그가 음악의 길로 들어서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곽승은 대한민국을 알린 1세대 지휘자다. 경희대 음대에서 트럼펫을 전공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 매네스 음악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뉴욕 시티센터 조프리 발레단(1970~77년)을 지휘했고, 로린 마젤에 발탁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부지휘자(80~83년)를 지냈다. 국내에서는 96년부터 부산시향,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지휘자를 역임했다.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을 시작으로 90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기원연주회, 남북 분단 이후 서울에서 처음 열린 광복기념 남북교향악단 합동 연주회 등 우리나라 클래식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늘 있었다. 곽 지휘자는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전 세계를 누벼온 이 코스모폴리탄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했다. "대구시향은 대구시민을 위해 있습니다. 시향을 통해 대구 음악을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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