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2시 대구 수성구 사월동의 한 외국어 학원 1층 로비.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일 야구 결승전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지만 이곳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학생들은 영어 말하기 시험을 앞두고 한 문제라도 더 맞히려고 책을 움켜잡고 있었다.
20분 후 시험이 시작되자 수험생들은 마이크가 달린 헤드셋을 쓰고 주어진 질문에 영어로 답했다. 말하기 시험은 수험생들의 응답 내용을 녹음한 뒤 미국으로 보내 현지에서 채점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그렇게 1시간이 흐르고 수험생들은 고개를 저으며 시험장을 나섰다. 이날 하루 동안 이곳에서 8차례의 시험이 치러졌고 모두 160여명이 응시했다.
◆말하기 능력이 대세=최근 기업들이 영어말하기 시험을 입사 전형에 반영하는 추세가 확산되면서 각종 영어 말하기 시험에 취업준비생들이 몰리고 있다. 최근 토익(TOEIC)이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국내 대기업들이 앞다퉈 영어 말하기 시험이나 영어면접 등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올해부터 입사 지원서 접수 시 반드시 영어회화 평가인 오픽(OPIc·Oral Proficiency Interview-Computer)이나 토익 스피킹 테스트의 성적표를 함께 제출하도록 했다. CJ그룹, SK그룹, 두산그룹, LG전자, 한진중공업 등 상당수 대기업도 영어 말하기 시험을 요구하고 있다.
오픽 관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6만여명이 시험을 쳤는데 올 들어 3월 한 달 동안에 1만7천여명이 응시했다"며 "올해는 응시자가 지난해에 비해 5배 가까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토익 스피킹(Speaking) 응시생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토익위원회 측은 "지난 한 해 토익 응시자가 200만명이었던 반면 토익 스피킹은 10만명에 불과했지만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고 했다.
영어 외에 중국어, 일본어 시험도 말하기 시험이 대세다. 2007년 3월부터 SJPT(일본어 말하기 시험)과 TSC(중국어 말하기 시험)이 첫선을 보인 이후 해마다 각각 1만명 정도가 응시하고 있다. 시험을 주관하는 YBM시사 관계자는 "필기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었다고 해도 실제 의사소통 능력과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업체들이 말하기 시험 점수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고 했다.
◆취업비용 급증=말하기 위주의 시험은 필기 시험에 비해 응시료가 2~5배나 비싸고 시험준비 과정도 까다롭다. 토익이나 토플 등 기존 필기시험도 포기할 수 없어 취업준비생들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오픽 시험장에서 만난 김현주(24·여)씨는 "토익, 토플, 오픽 등 영어 시험마다 출제 유형이 제각각이라 비용 낭비가 많다"며 "기업체마다 요구하는 성적 기준이 달라 여러 시험을 치를 경우 시험비용으로 월 2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OPIc 응시료는 7만1천500원, 토익 스피킹은 6만6천원이지만 한차례 응시만으로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어 취업준비생 한 명이 쓰는 영어 시험비용만 평균 연간 수백만원에 이른다.
특히 3월부터 각종 시험 응시료가 인상된데다 환율 고공행진까지 겹치면서 수험생들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 3만7천원이던 토익 시험비용은 3만9천원으로 5% 인상됐으며, JPT(일본어능력시험)도 기존 3만6천원에서 3만8천원으로 2천원 올랐다.
달러로 응시료를 지급해야 하는 토플의 경우 환율 변동에 따라 응시료가 몇만원씩 차이가 난다. 토플(IBT) 1회 응시료는 170달러. 원/달러 환율이 950원대였던 지난해 3월만 하더라도 16만원이면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환율이 1천500원대로 오른 2월에는 25만원까지 치솟았다.
대학졸업반인 김모(29)씨는 "영어회화 학원과 토플 사이버 강의 수강, 매달 시험 응시료까지 한 달에 50만원 넘게 들어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기가 송구스러울 지경"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임상준기자 news@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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