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인문학의 위기

논리 속 헤매는 학문 미래 불투명, 현실문제 등 개입 '제 가치' 찾아야

인문학이란 삶의 가치와 그 궁극의 의미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학문이다. 인간을 연구하는 인간과학으로서의 인문학은 기초적 교양을 쌓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학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오늘날 대학 교육의 목표는 인간적 가치나 덕성을 갖춘 인간보다는 시장논리와 효율성 논리에 떠밀려 경제적 능력을 갖춘 현실적인 인간을 양산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직접적으로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인문학은 점차 존립을 위협받는 학문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입시에서도 취업이 잘되는 학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바람에 인문학 분야는 비인기학과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졸업생들은 대부분 사교육계로 진출하거나,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프로필을 추가하기 위해 인문학 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문학 분야는 소위 심각한 사회적 병폐가 되고 있는 사교육과 모호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새 학기 들어 각 대학들이 수강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을 확정한 과목이 대부분 문학과 역사, 철학 같은 인문학 과목들이라고 한다. 대신 취업과 관련된 과목이나 쉽고 점수 따기 좋다는 와인 강좌나 영화, 메이크업, 배낭여행 등 소위 '꿀과목'들이 인기절정이다. 일찌감치 독서보다는 게임이나 만화, 영화 등 즉물적인 감각에 길들여진 세대가 진지한 교양과목을 선택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인지 모른다.

대학에서 교양교육의 핵심은 인문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데 대학의 교양 과목이 이렇다 보니 정규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도 일정 수준의 교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더구나 요즘은 인간적 소양과 기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전문 지식인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아무리 실용적인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라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한데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인문학이 단지 경박한 세태의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인문학은 지식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단편화되어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는 교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힘겨워진 것은 아닌가. 또한 자기영역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학제적 교류에 소홀한 것은 아닌가. 학문 간의 소통 없이 이론만으로 이루어진 논리 속을 헤매며 그것을 논문에 꺼내 쓰는 일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다 보니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처하지도 못하고 복잡한 현실 문제에는 개입을 꺼릴 뿐 아니라, 파편적인 것에 매달려 사회를 입체적으로 규명하고 해석할 능력조차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닌가.

고상한 학문이라는 척 '진리' 운운하며, 툭하면 '우리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어쩌고 하는 학자들, 방학이 오면 연구 활동이나 취업문제에 고민하는 학생지도보다는 별 목적 없는 외유에 더 바쁘지 않았던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쉬쉬 하며 하는 말이 있다. 인문학자는 엘리트가 아니면 사기꾼이라는….

말로는 지식의 대통섭 시대라 하면서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인접 학문에 무지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나라의 학문 풍토이다. 오히려 인접 학문에 관심을 가지면 전공이나 잘 하시라고 타박을 하거나 한눈을 파는 사람 정도로 치부한다. 왜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가 미술사나 음악사, 건축에 대해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지지 않고, 왜 예술을 가르치는 교수가 인문학에 대해 무지한 것을 반성하지 않으며,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하는 사람은 교양적 지식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대학에서 폐강되었다는 '동아시아 문명사'는 일률적인 문명사 강의가 아니라 동아시아 3국의 독특한 도자기 예술에 관한 연구나, 한문 문화권의 인쇄 출판 등에 관한 지식을 중심으로 더 진지한 기획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독어독문학탐색'은 독일 음악과 관련지어 더 흥미롭고 깊은 사유로 나갈 수는 없었던가.

왜 인문학은 인간 속으로 들어와 삶을 사유하고 이해하는 스스로의 가치를 보여주지 않고 소수 학자와 이론을 위한 학문이 되려고만 하는가.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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