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명작 소설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꼭 읽어야 할 소설은 대부분 고교 시절 다 읽었다. 그래서 세상사를 다 이해하는 듯했지만 사실 그 10대가 뭘 알았을까. 40대에 다시 시작한 그 첫 소설이 허만 멜빌의 '모비딕(백경)'이다. 738쪽의 방대한 분량에 바다를 향한 사나이들의 꿈을 그린 웅장한 소설이다.
바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거린다. 속에서 쇳물이 끓어오른다. 폭풍우를 뚫고, 저 망망대해로 한없이 가, 결국엔 산산이 부서지고 싶은 욕망이 치민다.
신이 왜 바다를 만들었을까. 왜 거대한 고래를 창조해 그 속을 유유히 헤엄치도록 만들었을까. 멜빌은 한쪽 다리를 잃은 한 사나이, 에이허브를 위해 마치 창조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대처럼 가망도 없고 혈기도 없는 부류의 사람들을 따뜻하게 데워줄 포도주는 이 세상에 없어. 묽은 셰리주(酒)조차도 너에게는 짙은 장밋빛만큼이나 독할 것이다.' 멜빌은 독한 럼주를 들이키며 포경선 최상단의 로열 마스트로 올라가 천계(天界)를 도모하라고 부추긴다. 거대한 고래를 뒤쫓으며 오대양을 누비라고 한다. 지상에서의 일이라는 것이 고작 부서진 심장을 그러모아 맞추는 것이겠지만, 저세상에서는 부서지지 않는 술잔으로 건배도 할 수 있다. 죽음, 삶, 그것이 뭐 그리 대수냐고.
'모비딕'은 몇 편의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유명한 것이 1930년 로이드 바콘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1956년 존 휴스턴 감독의 작품이다. 거대한 백경과의 사투는 5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스펙터클하다.
멜빌은 포경선에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고래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뱃사람들의 일상, 포경과 기름을 얻는 과정 등을 작품 속에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백경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이 피쿼트호를 타고 3일간에 걸친 모비딕과의 처절한 사투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당시 최고의 배우 그레고리 펙이 에이허브 선장 역을 맡아 백경을 향한 집념과 분노의 화신을 연기했다.
에이허브는 남성적 욕망의 용광로다. 고래잡이 40년 가운데 3년을 뺀 모든 세월을 바다에서 고래를 쫓아다닌 인물이다. 거침없는 도전과 불굴의 의지는 흡사 돌창으로 거대한 매머드에 맞서던 고대인들을 연상시킨다.
"도망칠 수 없어. 뿜어라, 뿜어, 찢어질 정도로 뿜어라. 이봐, 고래. 미친 악마가 너를 노리고 있다. 소리를 내어 뿜어라. 가슴이 터지도록 말이야. 이 에이허브가 네 피를 막아줄 거다. 물방아꾼이 냇물로 수문을 막듯이 말이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흰 고래를 향해 삿대질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신앙마저 무색한 한 인간을 발견한다.
에이허브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 스스로 신이 되었다. 갑판장인 스타벅이 "우리 모두 죽는다"며 백경 추격을 반대하자 그는 말한다. "흉조? 흉조라고? 만일 신이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분명히 정면으로 마주보고 말할 수 있을 걸세. 목을 갸우뚱하거나 노파들처럼 징조가 어떻고 할 리가 없어."
멜빌은 작품 곳곳에 반 기독교적인 태도를 보인다. 화자인 이스마엘이 야수 같은 퀴쿼크의 우상 숭배에 참여해 정통 기독교인임을 포기하고, 에이허브 또한 "창세기에 의하면 천사들은 인간의 딸과 어울렸고, 악마들도 지상의 욕망에 탐닉했다." "저 위대하고 장엄한 지고의 신 주피터도 장엄하게 물결을 헤쳐가는 이 빛나는 흰 고래를 능가할 수 없었다"는 등 신을 부정하는 말을 한다. 이 때문에 '모비딕'은 출판 초기에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백경에 올라 작살을 찔러대는 에이허브가 나온다. 그는 백경의 등에 박힌 무수한 작살들 속에 몸을 묶고 최후를 맞는다. 남은 선원들에게 얼른 작살을 던지라고 손까지 흔든다. 그러나 이 대목은 원작을 좀 더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원작에서 에이허브는 작살의 밧줄에 감겨 물속에 빠지는 것으로 묘사가 끝난다.
"나는 네놈에게 붙들린 채 네놈을 추적하고, 그리고 갈가리 찢어놓겠다. 이 창을 받아라!" 그는 작살을 던진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한 대상과 함께한다.
바다에 가면 모든 사람들은 거울 앞에 서듯 자신을 발견한다. 공포와 분노, 증오의 대상인 백경이 있고, 작살을 담금질하는 거대한 폭풍우가 있는 곳, 거기에 바다가 있다. 바다는 자기로부터의 해방구다. 신의 존재마저 모호해지는,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 끝에 얻어지는 자유로움, 그것이 멜빌이 노린 '모비딕'의 최고선이 아닐까.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