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의과대 총장으로 변신했다. 전직 장관 출신의 행정가가 의과대 총장이 된 사례는 대한민국 1호다. 본인 역시 생각지도 못한 변신이었다. 지난 2월 갑작스런 제의를 받고 놀랐지만 이내 스스로 변신을 허락하고 과감히 받아들인 것.
행정가로의 길을 걸어온 그가 일반대학 총장도 아닌 의과대 총장을 택한 것은 CHA의과학대학(옛 포천중문의과대)이 자신의 추구하는 이념과 잘 맞았기 때문. CHA라는 것은 차광렬 차병원그룹 회장과 차경섭 이사장의 성을 딴 것이기도 하지만 이 속에는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C는 Christianity로 기독교적 이웃사랑의 정신, H는 Humanism으로 인간 존중의 정신, A는 Academia로 연구와 탐구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런 정신은 박 총장이 차병원과 함께하기로 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가졌던 직책인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장과 한양대 대학원 초빙교수, 제주대 석좌교수 자리는 모두 버렸다. 차병원 총장으로서 임기는 3년. 연임도 가능하다지만 그는 "또다시 국가가 부른다면 마지막 변신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며 공직에 대한 길을 열어놨다. 지난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차병원 4층 대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남자의 변신은 무죄
-파격적인 변신, 왜 그랬습니까.
"인생에서 어떤 부름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전 다만 어떤 자리에 있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속한 조직을 건강하게 하려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어요. 사실 의과대 총장은 생각지 못했지만 막상 제안을 받고 나니 별 망설일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행정관료 출신이지만 성공한 대학경영 CEO 총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의과대 총장이 됐습니다. 포부는.
"첫째는 한국 최초의 노벨의학상의 꿈을 성취하는 월드클래스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키겠습니다. 실제 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 흐름에 발맞추고 있어 5년 후쯤에는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둘째는 차병원이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공학산업(BT)의 세계적 메카로서 인류에 건강백세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세계 수준의 최고 의료기관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구체적 목표는.
"2020년까지 차의과학대학을 현재 정원 850명 규모에서 3천명 정도의 건강종합과학대학으로 변모시켜 세계 10위권으로 키우겠습니다. 매년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의대 수준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생각이며, 이들에게는 전원 전액 장학금 혜택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전문의로 키울 방침입니다. 특히 BT분야에서."
-지난 18일 총장 취임식이 화려했다고 하는데.
"네, 저도 그렇게 많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2의 탄생, 두번째 삶을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장관급 인사들이 모두 18명, 차관급 인사는 100여명 가까이 참석해 주셨으며 화환과 화분만 500여개가 왔습니다. 병원을 가득 메울 정도였죠.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장선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고흥길 국회 문체관광방통위원장, 노동일 경북대 총장, 김한중 연세대 총장, 손병두 서강대 총장 등이 와서 축하해주셨습니다."
◆차의과학대학이 소속된 차병원에 자부심
-차병원은 어떤 곳입니까.
"차의과학대학은 1997년 설립되었으며, 현재 5개 학부와 대학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매년 신입생은 200명 정도 선발되며 총 정원은 800여명 정도입니다. 부속 및 협력병원으로는 강남차병원, 분당차병원, 미국 LA할리우드 장로병원 등 6개 병원이며, 세포 및 유전자 치료연구소 등 5개 연구소와 차 바이오텍 등 6개의 벤처사업도 운영중입니다."
-의학적 전문지식 부족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차병원에서 연세대 동문이나 다른 쪽으로도 총장 선출에 관해 많이 알아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행자부 장관 출신의 정통관료인 저를 기용한 것은 의학적 지식보다는 차의과학대학이 글로벌 마인드로 세계 속에 자리 잡는 미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전문 의학쪽보다는 예산확보, 대외 협력과 신인도, 대학 홍보 등에 치중할 계획입니다."
-대외 활동은 주로 어떤 일입니까.
"우선은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파동 이후 국가적으로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승인이 보류되고 있습니다. 빨리 국가적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도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국가적 지원으로 기술개발에 뒤처지지 않도록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료 산업화·관광화에도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차병원은 판교에 줄기연구센터를 만들려고 하고 있으며, 병원 의료타운 조성도 계획 중입니다. 인도, 중국, 중동의 부호들이 이곳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BT는 한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기술
-왜 BT가 국가적 미래입니까.
"IT산업은 어느 정도 발전단계에 와 있지만 BT산업은 아직도 미개척 분야가 많습니다. IT가 삶의 효율성, 편리성에 관계된 분야라면 BT는 인간이 생명에 관계된 소중한 미래산업입니다. 또 BT는 줄기세포를 연구해 불치·난치병을 고쳐주는 인류에 기여합니다. 그래서 제가 차병원의 의과학대 총장으로 미래에 의미있는 BT산업 발전에 촉진제 역할을 하고 싶은 겁니다."
-차병원이 이룩한 BT분야 연구성과는 어떤 게 있습니까.
"세계 최초로 배우줄기세포주를 이용한 혈관치료제 전임상에 성공했으며, 슬러지 질소 인간 난자동결보존법 개발·습관성 유산 원인 유전자 발견 등의 업적과 함께 20여년 전 동양 최초로 난자없는 여성의 임신도 이뤄냈습니다. 국내 최초로는 국내 최대 배아줄기세포주를 확립했으며, 불임치료센터 부문 ISO 9001 인증도 획득했습니다."
-대구에도 의료특구를 조성중인데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차병원이 유일하게 지방에 진출한 곳이 대구와 구미입니다. 대구여성차병원과 구미차병원인데 두 병원 모두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미차병원의 경우에는 125병실을 증축하고 흑자경영으로 돌아서 상당히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방균형발전을 주도한 전 행자부 장관으로서 의료기술 역시 지역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할 예정입니다. 수성의료특구도 조성이 되며 차병원에 이곳에 BT R&D센터, 연구소 등의 설립을 건의할 예정입니다."
◆신변잡기적 질문 '난 여전해'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매일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건강관리 비법입니다. 30~40년간 동네 인근 목욕탕에 아침마다 다니며 그곳에서 약 20분간 수염을 깎고 머리를 감는 등 몸을 깨끗이 하고, 나머지 40분은 그 안에서 온갖 운동을 합니다. 배치기, 손비비기, 팔굽혀펴기, 발지압, 허리굽혀 펴기, 찬물에 수영하기, 사우나 등 온몸을 다 풀어주며 하루를 시작하지요. 매주 주말에는 골프를 치는데 곧잘 합니다."(싱글과 보기 사이 정도)
-농담 실력은 여전하신지요.
"어떤 자리에든 웃음은 가장 좋은 청량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차병원은 웃음에 관한 좋은 얘기를 항상 들려주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재밌는 얘기를 찾아오는 미팅을 가지기도 합니다. 제가 행정관료지만 우스갯소리에 능한 것도 다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유쾌하게 대화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요즘도 최신버전 농담은 항상 준비하고 다니지요."
-참여정부 장관 출신이라는 게 부담이 되지는 않습니까.
"참여정부에 있었다는 것이 때론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난 진보적 보수이지 진보는 아닙니다. 특히 참여정부 이너서클도 아니고 그 당시 차관급에 있다 보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행자부 장관에 발탁됐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저를 발탁해 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고맙고요. 다만 전 정치적으로 활동하지 않았으며 당의 정책에 동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일로 승부했지요."
-효자라는 말을 듣는데요.
"재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지금 88세이신데 지난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지금은 굉장히 건강하십니다. 건강하게 지내주시는 것만 해도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박명재는?=1947년 경북 포항 출생. 가족은 부인과 세 자녀. 중동고, 연세대 행정학과·대학원, 네덜란드 국립사회과학대학원 졸업. 제16회 행정고시 수석합격. 청와대 행정비서관, 경북도 행정부지사, 중앙공무원교육원장, 행정자치부 장관, 이명박 정부 무임소 국무위원,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장. 저서 : 고시행정학, 한국행정개혁사, 공무원 교육이 변하면 나라가 바뀐다, 손짓하지 않아도 연어는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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