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서구적인 기독교가 아닌, 일본적인 기독교를 찾고자 한 독특한 사상가다. 더구나 이단시되던 無敎會主義者(무교회주의자)였다.
1861년 도쿄의 무사 가문에서 태어나 삿포로농대를 다니면서 기독교인이 됐다. "나는 오로지 두 J(Jesus, Japan)만 사랑하지만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신앙의 근거는 성서일 뿐, 교회와 그 관습은 껍데기로 봤다.
미국 유학후 교사로 일하던 1891년, 메이지 천왕의 '敎育勅語'(교육칙어) 봉독식때 절을 하지 않아 테러를 당했고 부인과 자식, 직장까지 잃었다. 신문 칼럼리스트로 일할 때는 러일전쟁에 반대하다 그일마저 못하게 되자 잡지를 창간했다. 1921년부터 일요일마다 도쿄 한복판에서 성서를 강의했는데 청중들이 많았다. 모든 일본인을 기독교로 이끌려 동분서주하다 1930년 오늘 사망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의 기독교·천주교 신자는 전체의 1%가 되지 않는다. 성서연구 모임에 참석했던 함석헌, 김교식 등은 한국에 돌아와 평생 무교회주의 활동을 했다. 일본보다 한국 기독교에 더 영향을 준 인물이 아닐까. 박병선 사회1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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