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칙칙한 지하실 벽면에 매달린 석고 머리. 하얀 벽을 배경으로 외줄에 매달린 석고상은 이목구비가 전혀 없는 밋밋한 구체다. 그 위로 프로젝터를 빠져나온 한 줄기 빛이 내려앉는다. 석고상은 얼굴을 담고 이름을 갖고 표정을 띈다. 잠시 머무는가 싶던 이미지는 순식간에 다른 형상으로 바뀐다. 인터넷 웹상을 떠도는 수많은 얼굴 이미지들이 석고상 위에 잠시 앉았다가 사라진다. 작품 제목은 '유령'. 프로젝터를 떠난 이미지는 석고상과 함께 가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허구이자 거짓일 뿐.
영남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낭시국립미술학교와 파리1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하원식(39)이 '대안공간 싹'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작품을 둘러본 기자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돈이 안되는 작품을 왜 만들죠?" 하원식은 전혀 기분 나쁘거나 당황하는 기색없이 답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과연 진짜인가 궁금했습니다. (앞에 있는 탁자를 가리키며) 과연 이것은 여기에 실재하는 것일까요? 프랑스 유학시절 공대 친구들과 작업할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가장 작은 입자인 '쿼크'을 탁구공 크기만큼 확대한다면 입자 간 거리는 400km라고. 어마어마한 빈 공간은 무엇이죠? 탁자는 실제 탁자가 아니라 탁자라고 느끼는 감촉 뿐이지 않나요?"
한동안 하원식은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설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결코 현학적 허세, 즉 잘난 체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앞으로 뭘로 먹고 살거죠?" 대답 대신 "결혼도 했고 6살, 4살 난 아이가 있다"고 했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막연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확신이 어디에 있나? 막연하면 불확실이고, 확신이면 당연한 거지.
세상은 '매트릭스'(Matrix)라고 외쳤던 워쇼스키 형제마냥 하원식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나 보다. A4 용지를 풀로 붙여 만든 의자는 그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매트릭스마냥 의자에서 흘러나오는 잘게 부서진 조각들이 그렇다. 쉴새없이 숫자를 토해내는 주식 전광판 위의 스마일 부호는 어느 새 자신을 겨누는 총구로 변한다(작품 '음모'). 과연 실체는 존재하는가? 전시는 11일까지. 053)745-9222.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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