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경주 재선거는 경주시민에게 맡겨두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어제 "나는 약삭빠르게 정치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날 박근혜 전 대표가 자신을 겨냥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비판한 데 대한 반박이다. 박 전 대표는 경주 재선거에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친박' 성향의 정수성 씨가 "이 전 부의장이 이명규 의원을 통해 후보 사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하자 그같이 언급했었다.

정 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 전 부의장 측의 태도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명확한 사실관계는 정 씨가 먼저 이 전 부의장에게 만나자고 했었고, 이명규 의원은 정 씨의 출마가 박 전 대표에게 미칠 영향을 원론적으로 언급했다는 정도뿐이다. 논란의 핵심인 사퇴 관련 언급은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이 말한 것을 놓고 정 씨 입장에서는 '압박'으로 느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체적 회유나 압박, 명시적인 사퇴 종용 언급이 드러나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느낌인 것이다. 본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를 정도로 뒤엉키는 게 선거전이다. 섣불리 한쪽 편을 들기 어려운 게 선거판의 온갖 주장들인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언행들이 비교적 조용하던 경주 재선거를 '친이' '친박' 싸움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지난해 총선의 연장전으로 가는 모양새다. 한나라당이 낸 공식 후보가 있는 마당에서 패가 갈려 싸우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선거는 지난번 친박연대로 나온 사람이 돈을 뿌린 것 때문에 경주시민이 다시 지역을 대표할 인물을 뽑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선거가 또 탈선하지 않도록 정치권도 도와야 한다.

한나라당이 계파 싸움으로 소란을 떠는 것은 그 자체도 우습지만 경주사회에도 불쾌감을 안겨주는 일이다. 지난번 투표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후보를 따져보고 싶을 경주시민들에게 막무가내로 어느 한쪽에 줄 설 것을 부추기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재선거에 뛰고 있는 3~4명 다른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에게도 선택을 호소할 기회를 짓밟는 횡포인 것이다. 한 지역의 재선거 하나에 목숨을 거는 듯한 과잉 개입은 어느 누구도 그 뒤는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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