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밋빛 중년을 위하여…책 '중년예찬'

중년예찬/한근태 지음/미래의 창 펴냄

'중년'이라면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마무리해야 할 때라는 분위기도 풍긴다. 긴 그림자, 축 늘어진 어깨, 멀어진 가족들, 외로움, 잃어버린 젊음….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두 손에 남은 것은 주름뿐이다.

그러나 지은이 한근태는 '중년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청춘이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기라면, 중년 역시 한 번 뿐인 매력적인 시기란 것이다.

중년은 계절에 민감하고 자연에 감탄할 줄 아는 나이다. 한두 번 맞이하는 봄이 아닌데, 다시 찾아온 봄이 새롭고, 봄마다 피는 꽃인데 그 꽃이 정겹다. 가을이면 낙엽지고 겨울이면 찬바람부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는데, 낙엽지고 찬바람불 때마다 경이롭다. 청춘은 결코 알 수 없는, 중년만이 알 수 있는 느낌이다.

어차피 내려올 산, 뭐 하러 올라가나 싶었는데 이제는 내려와야 할 산을 올라가는 재미를 안다. 입맛도 변했다. 입에 대지 않던 청국장을 맛있게 먹고, 그렇게 좋아했던 밀가루 음식은 싫어진다. 아내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기보다 순순히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됐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핏대 올리며 비판했는데, 이제는 그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 이면을 생각할 줄도 안다.

그래도 사람들은 중년의 짐이 무겁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중년의 짐은 무겁다. 그래서 중년은 우울해 보인다. 그러나 인생에 짐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모셔야 할 부모도, 건사해야 할 처자식도 없고, 만날 때마다 아쉬운 소리를 해대는 친구도 없다면 홀가분할까? 무거운 짐 덩어리가 사실은 기쁨인 것이다. 아직 등록금을 대줘야 할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번 돈으로 처자식의 옷가지를 살 때는 얼마나 기쁜가? 어머님이 살아 계시니 나이 먹은 형제들이 그나마 모여서 웃고 떠들지 않는가? 늘 스트레스를 주지만 직장이 있으니 돈을 벌 수 있지 않은가? 직장에서 나를 필요로 하니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닌가?

중년은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중년신사가 되려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쓸모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남자는 그렇다.

'나이든 여성에게 꼭 필요한 네 가지는 돈, 건강, 친구, 딸이다. 남편은 불필요한 존재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돈이라도 벌어왔다. 그러나 돈도 못 버는 나이가 되면 남자는 '안방의 거대한 쓰레기'로 변한다. 인정하거나 말거나 은퇴한 남자들이 그런 대접을 받을 가능성은 크다.

특히 '갑(甲)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은퇴 후에 어려움을 겪는다. 공무원, 대형 회사, 텔레콤 회사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권력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렇다. 권력을 가졌던 시절 그들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을과 병은 울고 웃었다. 웬만한 을과 병의 생사 여탈권까지 갖고 있었다. 수많은 을과 병이 찾아와 눈도장 찍을 때 갑은 삶의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사람을 똑바로 보지 않고, 누가 만나자고 하면 저 친구가 왜 나를 보자고 할까, 의심한다. 처음에는 대접받는 게 어색하지만 나중에는 대접받지 못하면 화를 낸다. 그런 생활이 집에서까지 이어진다. 그들은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 아쉬운 소리를 할 줄도 모른다. 누구를 만족시킬 줄도 모른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을 배반해버렸다는 충격에 빠진다.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것이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에는 돈만 벌어오면 충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년에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중년 남자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집에 꼭 필요한 존재인가.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집뿐만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영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어떤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해야 한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지 못한다면, 중년은 '안방의 거대한 쓰레기'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 224쪽, 1만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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