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해커

1996년 4월 6일 포항공대(포스텍) 전기전자공학과와 물리학과의 전산시스템이 파괴당한 일이 발생했다. 포항공대와 카이스트 해킹동아리 사이에 수년째 계속돼온 '사과전쟁'의 정점이었다. 당시 해킹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노정석 씨는 이후 몇 번의 곡절 끝에 창립한 블로그 전문기업 테터앤컴퍼니가 지난해 구글에 인수되면서 다시 화제에 올랐다. 성공한 해커이자 벤처들의 롤모델로. 그는 해커를 시스템 침입자가 아니라 '솜씨 좋은 프로그래머'로 봐 달라고 했다.

7, 8일 서울서 열린 2009국제해킹방어대회에서 한국 팀이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24시간 동안 20개의 과제를 해결하는 대결에서 종료 1분을 남기고 마지막 문제를 스페인 팀보다 먼저 풀어낸 것이다. 우승 팀의 맏형 조주봉 씨는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전문연구요원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컴퓨터광이었다. 대학 입학을 포기한 그는 해커 동호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10년 전 보안업체를 차렸으나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컴퓨터 보안 업체를 전전했지만 몸값은 실력에 비해 턱없이 낮았고, 대학 졸업장이 없어 자격증을 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대회 우승 후 "해커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보안 전문 지식을 지닌 인력으로 대우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대회 역시 그의 바람처럼 여타 해킹대회와 달리 시스템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해킹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떨치기 위한 의도였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보안에 대한 인식은 낮은 수준이다. 정보 보호와 관련된 예산은 적고,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전문인력에 대한 처우나 관련 소프트웨어 연구 개발 투자는 극히 짜다.

기획재정부 내부 업무망이 지난 2월 중순 해킹당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우리나라 경제 정책과 정보에 관한 문건들이 많아 외국 해커들의 소행일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청년실업을 해소한답시고 젊은이들을 구청 복사기 앞에 세워 두고 인턴이라고 부르는 정부 수준이 걱정스럽다. 실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재경 사회1부 차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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