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갓 쓰고 도포 입고' 대구 삼덕젊은이성당 배상희 주임신부

75년 역사 대구 삼덕젊은이성당 최연소 주임신부

▲ 배상희 삼덕성당 주임신부가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복장으로 변신했다.
▲ 배상희 삼덕성당 주임신부가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복장으로 변신했다.
▲ 배상희 주임신부가 허진혁 보좌신부, 김계남 신도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배상희 주임신부가 허진혁 보좌신부, 김계남 신도와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다.

대구에서 젊음의 상징이라는 동성로 인근 삼덕성당 배상희(39) 주임신부. 이곳에서 소임을 맡은 지 7개월째. 하지만 배 신부는 벌써 이곳에서 '젊음과 파격'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 전 신부가 환갑을 훨씬 지난 것에 비하면 아들뻘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75년 전통의 삼덕성당 역사에서 가장 젊은 주임신부다. 성당 정식 이름도 '삼덕 젊은이 성당'으로 바꾸었다.

나이는 나이일 뿐. 배 신부의 행동은 나이보다 더 젊고 경쾌하다. 지난 성탄절에는 순교한 김대건 신부 복장으로 미사에 등장해 신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물론 그 전 다른 성당에 있을 때도 김대건 신부 복장을 하기도 했지만, 삼덕성당에는 신선한 바람이었다. 그는 이 날만은 스타다. 미사가 끝나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신도들이 서로 사진찍기 위해 줄을 설 정도.

이번 주 역시 부활절이기 때문에 그는 또 많은 신도들 앞에서 변신을 한다. 2년 전 김대건 신부 복장을 하고 엑스코(EXCO)에서 패션쇼 모델로도 깜짝 데뷔한 적이 있다. 배 신부는 이번 주에도 너무 잘 어울리는 옛 천주교도 복장으로 신도들에게 다가설 계획이다.

청년들을 위한 행보도 일사천리로 진행중이다. 바쁜 직장 때문에 주말에도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청년 신도들을 위해 오후 5, 7, 9시 세 차례 미사예배 시간을 마련했다. 청년들이 세상으로 나가 하는 봉사활동도 더 활발해졌다. 이에 대한 지원도 더 체계적으로 바꿨다.

'젊음과 파격'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배 신부를 7일 삼덕성당에서 만났다.

?젊고 열린 마인드, '언제든 와요'

-주임신부로는 너무 젊지 않습니까.

"대구대교구에서 이번에 분명 파격적인 인사를 한 건 맞습니다. 이번에 저 뿐 아니라 다른 곳에도 40~50대의 젊고 추진력 강한 신부들이 곳곳에 포진된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하지만 제가 단지 젊다는 이유로 이곳에 오지는 않았고, 사제로서 주님 말씀을 전파하고 보다 더 많은 영혼을 여호와 곁으로 데려오기 위한 것이지요. 더 열린 자세로 다가갈 생각입니다."

-순교한 김대건 신부로의 변신은 왜 하시나요.

"조선시대 우리나라 천주교의 모습이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시대에는 색다른 경험이 되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 당시로 돌아가 동양 천주교를 재현하고, 국악으로 미사를 드리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김대건 신부 복장으로 나타나니 신도들은 아마도 타임머신을 타고 100여년 전으로 돌아간 듯 느껴질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 복장을 하는 날이 있나요.

"네. 1년에 3~5번 정도.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성모 승천일(8월15일)에는 반드시 김대건 신부 복장으로 신도들 앞에 다가갑니다. 우리 고유명절인 설날과 추석에도 김대건 신부 복장으로 변신합니다. 이날 만은 그 시절로 돌아가 순교의 의미를 되새기며 사제로서 본분을 다하려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유년부 신도들은 모두 한복으로 차려입고 앞자리에 앉아있어, 분위기는 한층 더 한국적 미사로 바뀌게 되는 것이지요."

?성당을 젊은이의 메카로

-삼덕 젊은이 성당에 부임해 뭐가 바뀌었나요.

"동성로에 자리잡고 있어 젊은층 유동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경북대의과대학도 인근에 있어 젊은 의대생들도 이 일대에 많이 살고 있구요. 동성로에서 일하는 젊은이들도 성당으로서는 인도해야 할 이들입니다. 지난 7개월 동안만 보면 신도가 850명에서 1천200명으로 늘었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는 말을 종종 하시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분석해보니 '얼'은 예전에 '갑' 말고 '을'을 얘기하는 것이고 '씨구'는 들어간다는 것. '절'은 '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억압받았던 '불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을' 즉 적자가 아닌 서자도 들어가고, 유교 뿐 아니라 불교도 함께 어우러져 서로 흥이 나고 신명나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너무 좋은 말이죠. 우리 성당도 이런 분위기를 지향해요."

-젊은이들의 봉사활동도 활발하다는데.

"제가 와서 젊은이들이 보다 활동적으로 봉사하기 위해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신도들 23명에게 매월 10만원씩 자동이체로 후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 돈은 매월 청년들 봉사활동 자금으로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오전 6시면 청년 봉사대가 교회에 모여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한 뒤 6시 30분부터 역 주변에서 노숙자, 불우이웃 등을 위한 무료급식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엔 연극부가 창단돼 오는 10월 뮤지컬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범상치 않아'

-곁에서 지켜보는 허진혁 보좌신부님, 배 신부님 어떤 분입니까.

"전 이제 서른 갓 넘은 보좌신부이고, 배 신부는 이제 불혹인 주임신부입니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추진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더 젊고 깨어있는 마인드로 다가서니 오히려 젊은이들의 열린 성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배 신부는 정말 어렵고 힘든 결정이 있다면 교구 주교님과 상의하면서 난관을 돌파해 갑니다.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지만 존경할 부분이 많습니다."

-김계남 신도님도 한 말씀 주시지요

"나이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배 신부가 나이를 불문하고 신도들에게 편안히 다가가 영혼의 문을 여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사제입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복장을 보고, 패션쇼에도 나갔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아무래도 사제지만 특별한 분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나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공간을 열어준데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젊어진 듯 합니다."

-배 신부와 서품 동기들이 모두 독특하다면서요?

"1999년 서품을 받았던 동기들이 다들 청소년 관련 분야에 거의 근무했는데, 지금은 가톨릭병원 기획실장, 북경성당 신부, 가톨릭대 교수, 침산성당 신부 등 다들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기들이 모두 사회에 무한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지금 어려운 시기에 더 중요한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부가 된 것에 대해

-가족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은 없는지.

"가족과 사회적 봉사 사이에서 한 쪽을 버리고 사회에 봉사하는 신부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때문에 미련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저도 가정을 가졌다면 남부럽지 않게 잘 가꾸고 행복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가정이 있어 사제로서 이 사회에 무한봉사를 할 수 없다면 여호와께서 제게 주신 직분에 충실할 수가 없었겠지요. 가족에 더 가치를 뒀다면 제가 신부의 길을 택하지도 않았겠죠."

-혹시 나이드신 분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너무 젊은 파격적 신부가 와서 노인들은 잘 적응이 안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들 역시 젊은 마인드의 신도들께 함께 어울릴 때 불만의 상당부분은 해소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나누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구는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반면 삼덕동 주택가 등에는 오히려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얘기를 다 들어줄 순 없지만 항상 존중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청년이나 어려운 이웃에 특히 애정을 갖는 이유는.

"제가 대구대교구에서 청소년 분야에 5년간 사무를 담당하면서 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릅니다. 이 때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을 이곳 삼덕성당에서 실현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과 함께 호흡하면서 제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면서 스스로 어려운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편한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세례명이 '마르첼리노'인데.

"성 마르첼리노는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 시대에 로마에서 활동하던 가장 뛰어난 사제였습니다. 마르첼리노는 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가운데 간수장 아르테미우스의 부인과 딸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실바 느그라 숲으로 끌려가 참수되었습니다. 이 순교는 그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지만 자세히 알려지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교황 다마소가 묘비명을 세웠고, 콘스탄틴 황제는 그 무덤 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저의 세례명은 어릴 적 왜관 베네딕도 성당의 한 독일 신부가 지어주셨습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배상희 신부는?

1970년 경북 성주 출생. 대구가톨릭신학대학 학사 및 석사, 1999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내당성당 보좌신부, 2002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복자성당 보좌신부, 2002~2006년 천주교 대구교구청 청년담당 및 대학생 담당, 2006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구미 옥계성당 주임신부, 2008~ 천주교 대구대교구 삼덕 젊은이 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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