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언 올맨(1946~1971)은 불과 25세의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서던 록(미국 남부 지방의 거친 분위기의 록)을 록의 주류(主流)에 올려놓은 올맨 브라더즈의 리더였습니다. 특히 에릭 클랩턴의 최고 걸작인 'Layla'에서의 슬라이드 기타는 클랩턴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뒷 얘기가 있습니다.
버디 할리(1936~1959)의 죽음도 아쉽습니다. 초창기 로큰롤의 거장으로 아마 60년대에 나온 록그룹치고 그의 작품을 연주하지 않은 이도 드물 것입니다. 'Vincent'로 유명한 돈 맥클린의 'American Pie'는 그에게 바치는 만가(挽歌)인데 맥클린은 '그가 죽었을 때, 음악도 죽었다'라고 했습니다. 할리는 비행기 사고로 죽었는데 이때 'La Bamba'의 주인공 리치 발렌스(1941~1959)가 18세의 나이로 함께 사망했습니다.
또 비행기 사고로 죽은 이로는 로니 반 잰트(1949~1977)가 있습니다. 이름은 좀 생소하지만 바로 올맨 브라더즈의 서던 록을 가장 충실하게 이었다고 평가받던 리너드 스키너드의 보컬입니다. 이 친구는 좀 폭력적이어서 그룹을 만들 때 마음에 드는 뮤지션이 있으면 강압적으로 끌고 왔다고 합니다.
'Time In A Bottle'로 잘 알려진 짐 크로스(1943~1973)와 소울 보컬의 모든 것을 보여준 오티스 레딩(1941~1967),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1954~1990) 등도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습니다.
글램록의 최고봉이던 마크 볼란(1947~1977)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글램록은 뮤지션의 성향에 따라 글리터록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록 최고의 미남자 데이비드 보위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리더 루 리드가 대표적인데 특히 무대에서의 화려함을 지향합니다. 그룹으로서는 이언 헌터가 이끌던 모트 더 후플과 초창기의 퀸 등이 있습니다.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 슈퍼스타 중 한 사람으로는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보냄(1948~1980)이 있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 증상이 심했는데 잠을 자다가 구토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죽은 1980년의 어느날, 대학 음악감상실에서 보냄이 죽었다는 쪽지를 받고 2시간 내내 레드 제플린의 곡만 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초창기 롤링 스톤즈의 리더 브라이언 존스(1942~1969)는 익사했습니다. 그러나 존스의 인기와 재능을 시기한 보컬리스트 믹 재거에 의한 살해설도 만만찮습니다. 아마 존스가 죽은 뒤 재거가 간판으로 부각된 데 대한 못마땅함일 것입니다. 사실 존스는 엄청난 미남에다 귀공자적인 분위기로 악동 이미지인 롤링 스톤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많았습니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후원해 제2의 비틀즈라고 불리던 배드 핑거즈의 리더 피트 햄(1947~1975)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리치 블랙모어의 뒤를 이어 딥 퍼플에 가입했던 토미 볼린(1951~1975)과 아름답고 조용한 포크송을 많이 남긴 팀 하딘(1941~1980), 로큰롤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그룹 the Who의 드러머 키스 문(1947~1978) 등의 사인은 약물과용이었습니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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