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의 봄은 어떨지? 진달래, 복사꽃, 봄나물, 산불, 황사…? 독도는 지금 봄햇살이 따사롭다. 숲이 없는 이곳에서는 물빛을 보고 계절을 가늠하곤 한다. 독도에 봄이 왔다는 것은 김과 미역을 보면 알 수 있다.
겨우내 독도에는 김이 지천이다. 물결이 찰랑거리는 바위마다 김이 처녀의 머리채처럼 너울거린다. 그러나 기온이 오르면 김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일순간에 녹아 버린다. 이 즈음이면 가까운 물속으로부터 미역이 발을 붙이기 시작한다. 독도 사람들은 미역이 일렁거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봄이 온 줄 안다.
독도 지상의 봉우리는 잿빛 바윗돌의 민둥산이지만 독도 바닷속 봉우리는 거대한 밀림이다. 밀림에는 미역·대황·파래·감태·모자반·우무가 있으며 이름마저 생소한 '부푼말' '잇바디가지' 따위의 해조류들도 있다. 학자들이 지난해까지 독도 부근에서 확인한 해조류는 모두 253종이다.(강릉대 생물학과 김형섭 교수 자료)
독도는 남쪽의 동한난류와 북쪽의 북한한류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지역으로, 녹조류 26종, 갈조류 67종, 홍조류 160종 등으로 다양한 개체군을 보인다. 바닷속 밀림은 수심 10m를 경계로 서로 다른 식생을 보이는데, 상층부에는 대황이 숲을 이루고, 하층부에는 감태가 해중림을 이룬다.
독도의 해조류를 일별할 때, 이곳 사람들과 밀접한 것은 역시 대황·김·미역 정도이다. 대황은 키가 50㎝ 정도로 옅은 바닷속 바위에 붙어 자라는 먼지털이 모양의 해조류이다. 독도에 큰 파도가 한번 왔다 가면 해변에는 대황이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대황은 역한 냄새를 풍기며 썩는데, 여름에 이를 건드리면 바다모기가 초파리떼처럼 까맣게 날아오른다.
흔해 빠졌지만 이곳에서 대황은 명색이 구황식(救荒食)이다. 울릉도나 독도 사람들은 '바다의 보릿고개' 시절 이 대황을 잘게 썰어 쌀과 함께 넣어 밥을 늘려 먹었다. 지난해에도 독도에 뱃길이 끊겨 쌀이 떨어질 지경에 며칠간 대황을 보태 밥을 지어먹기도 했다.
지금은 주로 말려뒀다가 데쳐서 하루쯤 우려낸 다음 젓갈류와 버무려 반찬으로 먹는다. 뭍의 사람들은 음력 정월 대보름쯤부터 이월까지 대황으로 찜나물을 즐겨 해먹는다. 채 썰듯 해서 쌀가루를 갈아 넣어 걸쭉한 죽과 같이 만들어 먹는 것이 바로 대황찜나물이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해조류는 김과 미역이다. 1,2월에 바위에 붙는 김은 양식김과는 달리 향미가 뛰어나다. 두께가 도톰하고 길이도 10~20㎝가량 되며 씹히는 감촉이 우들우들하다. 떡국이나 국수에 고명으로 서너 줄기만 넣어도 한층 맛을 더한다.
그 좋은 김도 결국 그림의 떡. 겨우내 거친 파도 때문에 딸 수 있는 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설령 따더라도 겨울에는 햇볕이 귀해 온돌방과 같은 실내에서 말릴 수밖에 없는데, 독도는 김을 말릴만한 그런 방이 없다.
미역은 우리나라 동해안 어디나 흔하지만, 이곳 독도 미역은 가까운 울릉도와도 확연히 다를 만큼 맛이 독특하다. 지금과 같이 초벌미역이 막 자라기 시작하는 이 연녹색의 미역은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달다. 독도 생미역을 먹어본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 미역은 떫은 맛이 전혀 없고 향이 진하고 뒷맛이 상큼하다"고 한다.
독도에 미역은 지천으로, 바닷가에서 운동화 신은 채 소매만 걷고, 한 웅큼 꺾으면 한 끼 반찬거리로 넉넉하다. 흔하게 널린 미역이지만 말린 독도 미역 한 각(角)을 만드는 일은 수월찮다. 미역을 베서 그날 하루해 동안에 말려야 한다.
말리는데 사나흘 시들면 나중에 물에 담그면 진액이 빠져나오고 쉬 풀어진다. 만일 말리기 좋도록 햇볕이 쨍쨍하더라도 물결이 사나우면 벨 수가 없다. 설령 베더라도 말릴 곳이 없다는 것이 또 하나 장애. 보통 바위 위에 널어 말리는데, 독도 미역철이 바로 괭이갈매기 산란철이어서 온 천지가 갈매기 똥밭인 게 또 문제이다. 미역을 널어놓으면 자칫 '똥미역'이 되기 일쑤이다.
독도에 살더라도 독도 미역과 김을 맛보기는 쉽지 않다. 경상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10가구 정주계획이 현실화 되면, 독도 특산 김과 미역이 식탁에 오를 수도 있겠다. 그 때는 독도 김과 미역이 '계절의 전령'이 아닌 '미각(味覺)의 전령'이 될까.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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