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욱의 달구벌 이야기] (13) 연귀산 자락

"거북이로 끊어진 지맥 잇다"

연귀산(連龜山)은 봉산동과 남산동의 경계가 되는 곳이다. 그 이름에 지맥이 약해 '거북이로 혈맥을 이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돌거북은 산과 평지의 끊어진 지맥(地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 보면 '연귀산은 대구의 진산이라, 돌거북을 만들어 머리는 남쪽으로 꼬리는 북쪽으로 하여 지맥을 통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불기운이 많은 용두산'비슬산'수도산의 기운을 다스리는 비보 진압풍수로 해석할 수 있다.

풍수의 이치는 땅의 생기를 받아 사람과 터전의 생명력과 건강성을 유지하려는 데 있다. 땅은 저마다 지기(地氣)가 있는데, 지기는 빛과 바람과 물의 영향을 받게 된다. 바람과 물은 지기를 운반하는 존재이며 빛은 바람을 만들고 물은 끊임없이 순환시키는 동력이다. 또한 바람과 물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산이다.

연귀산은 달구벌의 진산(鎭山)이다. 옛 문헌에 따르면, 달구벌의 입지에 있어서 용맥(龍脈)의 흐름은 팔조령~최정산~비슬산~성불산~연귀산~아미산~영남제일관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전통 도읍의 입지에서 배산임수 지형은 북쪽에 진산을 두고 남쪽으로 안산을 배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유형인데, 남쪽에 진산이 있다는 게 특이하다. 그러나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팔공산에서 바라보는 것과 비슬산에서 바라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팔공산은 대구의 상징인 명산이다. 그러나 읍성시대에는 연귀산을 달구벌의 진산으로 보았다. 그에 따라 비슬산의 지맥을 이어받은 성불산이 연귀산을 거쳐 북쪽의 분지를 향해 여러 갈래의 지맥을 뻗어 놓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같은 관점에서 보면, 달구벌 분지의 모습은 팔공산을 향해 엎드리고 있는 큰 거북 형상이 된다.

그런데, 물길이 가로막고 있어서 문제였다. 당시 반월당에서 달서천으로 흐르던 물길 때문에 생기가 영남제일관에 이르지 못한다고 보았던 것 같다. 아마도 생기는 물을 만나면 발산한다는 풍수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연귀산에 거북바위를 놓아 생기를 북돋우려고 한 것 같다. 그 같은 돌거북이 최근까지 거꾸로 앉아 있었다.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제일중학교 마당에 방치돼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달구벌 얼 찾기 모임'에서 2003년 바르게 앉히면서 표지석을 설치해 놓았다.

연귀산은 정상부가 광장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기우제나 다른 집회 장소로 사용했던 것 같다. 평리의 사직단(社稷壇)과 침산의 예제단(禮祭壇)과 함께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달맞이를 하는 산이란 뜻을 지닌 월견산, 또는 자라(거북)이 있는 산이란 뜻을 지닌 자라바위산으로 불렸다. 그런가 하면, 일제시대에는 정오를 알리는 포를 쏘았던 포대가 있어서 오포산(午砲山)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수도산의 옛 이름은 삼봉산(三鳳山) 또는 기린산(麒麟山)이었다.

삼봉산이란 이름은 신라 진성여왕 때 부근에 저수지를 만들어 풍년이 들게 해준 터줏대감의 세 아들 대봉(大鳳), 봉덕(鳳德), 봉산(鳳山)을 뜻할 뿐 아니라, 그들이 살던 마을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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