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문학평론가 고(故) 김양헌 선생

메마른 대지가 연일 산불을 부추기던 봄날, 고운 분홍빛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떨리게 하는 복사꽃밭 한가운데에 영원의 집 짓고 사는 문학평론가 고(故) 김양헌 선생을 만나러 갔다. 지난해 여름, 간암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문학을 이야기하던 문우, 지인들과 작별했던 선생은 평소 좋아했던 꽃 속에 묻혀 지냈다. 슬픔이야 늘 시린 거지만 가신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이승과 저승의 벽 앞에서 만나니 눈물이 났다. 잔디로 정돈된 그의 무덤 앞에서 평소 즐겨 피우던 담배를 붙여주고 제주(祭酒)를 돌리고 다시 그의 명복을 빌었다. 물론 그와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두 그리워한다는 마음도 전했고 이쪽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자알 지내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그를 아는 사람들, 특히 문인들은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고 안타까워했다. 문학평론가가 귀한 대구경북 문단에서 그의 존재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기 때문이리라. 살아 생전 그는 지극히 서정적인 별칭인 '달빛몽돌'로 불렸다. 장옥관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성과 감정의 균형 잡힌 사고를 가졌기에, 누구보다도 평론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그도 그리 불리는 걸 좋아했다. 그의 이지적 평론의 대상이 된 문인들만 해도 상당하다. 문인수, 엄원태, 강은교, 이동순, 이중기, 신경숙, 함민복 등등 모두 열거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이 시대 문단을 풍미하는 많은 문인들이 그의 평론에 온몸을 맡겼다.

계성고와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구미 금오공고에서의 교단 생활까지 대구경북을 떠나지 않고 평론을 통해 지역 문단의 중심을 잡았던 그의 글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시보다 더 시적인 그의 언어 구사에 놀란다. '자신의 삶을 오롯이 문학의 제단에 바쳤다'는 그에게 이제 남은 사람들이 할 일은 그를 기억하고 한국 문단의 평론사적 관점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다.

문학적 가치가 있는 좋은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저 감수성만 난무한 작품이 아닌, 문학의 시대적 사명감과 올바른 문장을 솎아내고 대중들에게 제대로 인식시켜줄 수 있는 평론가가 더 많이 기다려지는 현재의 문단에서 그의 발자취는 분명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향년 52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애를 참 멋스럽게 살다간 문학평론가 김양헌 선생이 영천시 임고면의 복사꽃 골짜기에 누워 있다. 해 바뀔 때마다 무진장 무진장 필 환장할 복사꽃 보러 봄마다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질 것이다.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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