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교문화 '정토' 산수문학 '보고'

백련암에 걸려 있는 편액(현판)은 주왕산 불교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백련암에 걸려 있는 편액(현판)은 주왕산 불교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공원 주왕산은 찬란한 불교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주왕산 대전사 바로 옆에는 암자가 하나 있다. 바로 백련암이다. 백련암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중한 역사 자료가 있다.

마루 천장에는 백련암의 중수기를 적은 것으로 보이는 편액(현판)과 축원문, 옛날 주왕산을 오간 이들을 새긴 현판 등이 걸려 있다. 글씨가 바래있는 것을 볼때 편액 제작 연대는 족히 수백년은 넘어 보였다. 아직 편액에 대한 연구가 되지 않아 아쉽지만 주왕산이 '불연이 깊은 산'인 것만은 확연했다.

주왕산에는 한때 전기없는 마을로 유명한 내원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문명의 이기'로 사라졌지만 내원마을의 유래인 '내원 '역시 불교에서 유래(미륵보살의 정토)됐다.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사찰과 암자가 많았다. 임진왜란으로 많은 사찰과 암자가 소실됐지만 그 이전까지의 주요 기록을 보면 30여개의 사찰과 암자가 있었고, 구전에 의하면 한때 50개의 사찰과 암자가 주왕산을 중심으로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또한 최소 200명 이상의 승려가 주왕산에 기거했다고 한다.

실제 조선의 명승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대전사와 백련암 인근의 터에서 승병을 훈련시켰다는 기록(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주왕산에서 승병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 편지)을 보아도 당시 주왕산의 불교 세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이제 주왕산의 아름다움과 함께 불교 문화의 발자취도 함께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주왕산은 봉화와 안동 땅의 청량산과 더불어 산수문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청송군은 최근 주왕산의 역사와 문학 등을 총정리한 '주왕산지'를 내놓았다. 이 책은 1833년 청송 부동면 마평 출신의 학자 서원모(호는 주남산인)가 최초로 주왕산의 역사·문화 자료를 수집해 편찬한 책을 다시 정리한 책이다.

고문헌 속에 잠자고 있던 주왕산의 역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다.

200년 전의 주왕산지는 조선의 유명 학자와 작자 미상의 선현들이 주왕산을 유람하고 그 절경을 노래한 수많은 시와 글, 주왕산의 계곡과 골짜기에 얽힌 전설, 청송의 역사·문화 유적에 대한 기록을 선현들의 시각과 섬세한 필체로 담고 있다.

실제 퇴계는 "어떤 사문의 한 늙은이가 청송부사가 되어 스스로를 청송백학(靑送白鶴)이라 칭하였다. 내 일찍이 청송부사가 되기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고 단산을 얻게 되었다"며 청송을 동경한 마음을 시로 노래했다.

주왕산의 문인으로는 학봉 김성일, 조선후기 청송부사를 지낸 홍의호, 조선중기 영남 석학 여헌 장현광, 18세기 청송을 대표했던 유학자 권렴 등 그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주왕산은 그 절경과 함께 문학이 흐르고 불교의 문화와 그 정신이 골짜기마다 담겨 있는 것이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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