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꼬리표 벗어 던지기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최근 대형 마트에 들를 때마다 북적대는 사람들로 놀랄 때가 많다.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마트에서 어떤 물건을 살 때 상품의 이력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유통기한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어떤 생산자가 무슨 재료를 이용해서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었는지, 세부적인 것까지 확인 하는게 점점 소비자의 중요한 임무가 되었다. 과일이나 채소 포장에도 생산지와 생산자 이름, 사진까지 붙어 있으며, 특히 한우는 출생부터 판매까지 꼬리표가 붙어 있어 우리가 최종 소비하는 단계에서 바코드만 찍어봐도 어떤 소를 먹는지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심지어 요즘은 소비자가 의류를 구매할 때 바코드를 찍으면 원료가 뉴질랜드 어느 목장의 양에서 나온 양털인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상품의 꼬리표에는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다.

이런 꼬리표는 물건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붙어 다닌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물건에 부착하는 꼬리표를 남이나 심지어 자신에게도 스스로 붙이길 좋아하고 또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꼬리표는 대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다. 삼류 대학 출신, 전과자, 불운의 스타, 비리 정치인, 만년 후보선수, 신용불량자, 누구의 아들…등등 사람에 있어서 꼬리표가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꼭 상관없는 꼬리표부터 물고 늘어진다. 사회생활에서도 직장, 직위, 어느 대학 몇 학번인지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사람됨을 이해해 버리는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꼬리표를 업그레이드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도 하지만, 학력 위조와 같은 좋지 않은 방법과 무리한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출신 대학은 인생에서 지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대표적인 꼬리표가 되어서 취업, 승진, 결혼에 영향을 주고 심지어 무덤까지 남게 된다. 학벌에 대한 꼬리표는 현대판 신분제로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굳혀가고 있다. 이것은 학벌 좋은 사람이 능력도 좋을 것이라고 믿는 선입관과 우리 사회가 학벌 외에 올바른 능력을 평가할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서 기나긴 삶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 인생에서 꼬리표는 항상 따라 다닌다. 남이 우리에게 붙인 부정적인 꼬리표 때문에 우리는 일정한 한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그 꼬리표가 인생에서 우리가 갖게 될 기회를 제한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제 부정적인 꼬리표를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시각으로 자기 내면과 인생을 들여다보자. 남들이 붙여놓은 꼬리표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성기혁 사랑이 가득한 치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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