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애완견 넘어 '반려동물'까지…당신에게 개의 의미는?

▲ 주인 이상열씨가
▲ 주인 이상열씨가 "사랑해"라고 말하자 반갑게 품에 안기는 로또(말라뮤트·6살·수컷)
▲ 12일 오후 말라뮤트 가족이 두류공원 산책에 나서자 시민들이 관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 12일 오후 말라뮤트 가족이 두류공원 산책에 나서자 시민들이 관심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퍼스트 도그'(first dog).

지난 14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가족의 애완견, '보(Bo·포르투갈 워터 도그)'가 백악관에 입성하자 미국 언론은 이 개에 대한 소개와 조언으로 도배를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에서 개를 기르는 가십성 기사 정도일 텐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퍼스트 도그'라 부를 만큼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는 미국의 애견문화를 짐작할 만하다. 오바마뿐 아니라 전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는 '바니'(스코티시 테리어)를, 빌 클린턴은 '버디'(래브라도 리트리버)를 키우면서 백악관 8년 생활을 함께했다.

비단 미국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개의 개념이 '집 지키는 동물'에서 '애완견'을 넘어 삶을 함께하는 '반려동물'로 바뀌고 있다. 특히 '나홀로족'이 늘고 자녀의 독립 등으로 노인들의 애완견 키우기도 늘어나는 추세. 정확한 통계가 없어 추정만 가능한 애견인구도 1천만명에 이르렀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을 정도로 개를 키우는 이들이 상당수에 이른 게 우리의 현실이다. 집에 늦게 들어갈 때 반겨주는 이도, 기분이 울적할 때 위로해주는 이도 바로 애완견. 지치고 힘들 때 항상 옆에 있어주기에 개를 가족이라 부르는 이들도 적잖다. 심지어 개를 '개'라고 불렀다고 타박하는 이도 가끔은 있다.

하지만 더러 강아지라고 부르기엔 덩치가 커 슬슬 겁부터 나는 개도 있다. 그래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처럼 주인이 보기에는 한없이 온순한 개들이기에 주인도 덩치 큰 개들을 키우다 보면 고충이 많다고 털어놓는다. 아파트나 공동주택에서 살 생각은 아예 하지 못하며, 심지어 작은 개에게 큰 개가 물려도 하소연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작은 개를 키울 때보다 큰 개를 키우는 게 훨씬 좋다는 이들. 이들은 매주 일요일 두류공원 일대를 산책 삼아 '제 새끼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사람들과 접촉이 잦을수록 성숙해요."

지난 12일 오후 두류공원 산마루 매점과 야외음악당 사이에는 애견쇼에서나 봄직한 개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CF에서나 봄직한 '아프간하운드', 날렵한 몸매가 인상적인 '도베르만', 짧은 다리지만 충직한 자세가 일품인 '닥스훈트' 등이 연이어 등장했다. 사람으로 치면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공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터였다. 이 때문에 봄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도 애견들의 자태에 저마다 눈길을 던졌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말라뮤트 가족'과 공중파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상근이'로 잘 알려진 '그레이트 피래니즈'였다. 특히 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된 이유는 덩치 때문. 웬만한 송아지 크기의 이들이지만 사람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아 처음 보는 이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상당했다.

순식간에 상춘객들이 몰려들었다. 3개월짜리 새끼 3마리의 귀여움에 몸서리친 시민들은 함께 있던 9개월짜리와 이들 4마리의 아빠인 6년산 '말라뮤트'의 덩치에 소스라쳤다. 오히려 개들은 자주 겪는 일이라는 듯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 시민들은 너도나도 '말라뮤트' 가족을 벗 삼아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개들도 자신들만의 봄을 만끽하기 위해 나온 터였기에 기념사진 촬영에 기꺼이 응했다.

썰매를 끌던 개로 '시베리안 허스키' 등과 함께 북극 인근에서 자란 개답게 털이 많아 땅바닥에 몇 바퀴 구르면 먼지 투성이였지만 시민들에게 먼지따위는 대수롭지 않아보였다.

'로또'라는 이름의 6살짜리 수컷 '말라뮤트'의 주인인 이상열(52·달성군 논공읍)씨는 매주 꼬박꼬박 이곳을 찾고 있었다. 3개월짜리와 9개월짜리 '말라뮤트'는 모두 '로또'의 새끼. 이씨가 매주 이곳에 나오는 이유는 '말라뮤트' 가족의 재회도 이유겠지만 진짜 이유는 견격(犬格)을 위해서였다. 이씨는 "농장에서 개를 키우는데 아파트에서 키우는 개들보다 훨씬 순하다"며 "사람들과 접촉이 잦고 사람이 사랑을 많이 줄수록 개도 마음을 연다"고 했다. 아파트처럼 갇힌 곳에서만 생활하면 보고 경험하는 게 적어 외부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 때문에 바깥으로 많이 데리고 나올수록 순해진다는 게 이씨의 지론.

실제로 이씨가 '로또'에게 "사랑해"라고 하자 신기한 건지, 당연한 건지 '로또'는 벌떡 일어나 이씨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씨의 개뿐 아니라 다른 개의 주인들도 자신의 개에게는 동물과 의사소통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큰 개를 키우기가 더 어렵다고요? 천만에요."

기르는 개가 크다 보니 일반 주택 외에는 키우지 못한다. 하지만 꿋꿋이 아파트나 빌라에서 키우는 이들도 있다. 마당이 개에게 가장 좋은 곳이지만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가 쉽잖다. 무엇보다 큰 개의 경우 거의 짖지 않아 주민들에게 큰 피해는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오히려 작은 개일수록 시끄러워 주민 간 분란을 일으킨다는 것.

'그레이트 피래니즈'를 키우는 공준호(27·중구 대안동)씨는 5년간 몰티즈를 키우다 피래니즈를 키운 지 4개월째였다. 공씨는 원룸에서 '몰티즈'를 키우다 큰 개를 키우고 싶어 결정한 것이 '그레이트 피래니즈'. 하지만 이 개를 키우기 위해 공씨는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옥상에서 자랐지만 4개월째임에도 제법 큰 '그레이트 피래니즈'는 '몰티즈'에 비해 사료만 10배 이상 먹어치울 정도로 식성이 좋다. 하지만 좀체 짖지 않아 이웃의 항의가 적고 영리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공씨의 귀띔. 잃어버릴 염려가 적은 것도 큰 개의 장점이다.

빌라에서 '도베르만'을 4년째 키우고 있는 문상헌(40·중구 대신동)씨는 "훈련만 시키면 이웃에 해를 끼치지 않는 게 큰 개"라고 했다. 큰 개의 경우 영리한 종들이 대부분이라 주인과 교감하고 명령을 수용하기까지 최장 20일이면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어느 개를 막론하고 짖는 소리는 야간에 상당한 소음이 되고 이웃과 분쟁이 될 소지가 충분하기에 큰 개를 키울 때 훈련은 필수. 무엇보다 개의 안전까지 생각한다면 '기다려' '조용히' '안돼' 등은 도심에서 개를 키우기 위한 중요 명령어다.

그렇다고 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과의 합의가 필수.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3개월 된 새끼 '말라뮤트'를 키우고 있는 이정숙(27·여·남구 대명동)씨는 말라뮤트의 털갈이 때문에 식구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씨는 "새끼를 집안에서 키웠는데 털이 많은 종이다 보니 식구들의 성화로 지금은 마당에 내놨다"고 했다.

이씨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3개월짜리 새끼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에는 '저 귀여운 걸 나도 하나 키웠으면…'하는 바람이 고여 있었다.

?"순종은 아니라도 잘 먹여 잘 키우면 보배죠."

지난 5일 오전 8시 두류공원 야외음악당 끝자락과 두류정수장 사이 길 옆에는 15마리 남짓한 개들이 나무에 각각 매여 따로따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개주인과 구경꾼 30명 정도 되는 이들이 아침 일찍부터 각자의 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얼핏 보니 불독, 불테리어, 롯드와일러, 그레이트데인, 그레이하운드를 닮은 것도 있었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품종을 물으니 대답이 가관이다. "뭔 거 같냐. 다 섞였는데."

이곳에 모이는 이들은 힘 좋고 빠른 개를 키우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아침 이른 시간에 외진 곳에 모이는 데도 이유가 있었다. 특히 이들의 개가 크다 보니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 시간만큼은 개들을 잠시 풀어 놓기도 하고 누가 힘이 좋은지 붙여 보기도 했다. 보통 사람이 봤을 때 투견장에서나 봄 직한 힘 겨루기도 있었다. 신고도 많이 당했다는 게 이들의 항변이었다.

이곳도 2년 전부터 똬리 튼 곳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 워낙 큰 개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니 조금만 짖어도 사람들이 자지러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아주 간혹 있는 경우지만 사람을 무는 개가 생길 경우 가차 없이 된장을 바른다"고 입을 모았다. "'입질'(사람을 무는 것) 들어가면 바로 직이야지(죽여야지)."

대구에는 이곳뿐 아니라 수성구 수성못 인근과 동구 망우당공원 인근이 비슷한 모임터라는 귀띔도 전했다. 오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들 때쯤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글·사진=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