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스캔들, 추문, 비리 의혹)'. 이 조어는 1972년 미국에서 탄생했다.
이른바 스캔들을 뜻하는 게이트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그 용어가 미 제37대 대통령 닉슨 덕분에 생겨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것. 한국에서의 각종 게이트는 '워터게이트'를 기점으로 태어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워터게이트는 호텔과 사무실을 겸한 미국 워싱턴의 빌딩 이름. 재선을 노린 닉슨의 '음흉한' 스캔들, '워터게이트(Watergate complex, 또는 Watergate Scandal)'가 그 건물에서 빚어졌기 때문에 단순한 빌딩 이름에서 일약 '사회 권력자들의 비리'란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 수명은 질기고도 지겹다. 한국 현대사를 잇고 있는 게이트는 정치와 경제 권력에서 유독 고리가 더 단단해 국민들은 서글프다.
현재 '노무현 게이트'는 단순한 의혹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근거있는 게이트인지 여부에 대해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추한 냄새는 벌써 풍기고 있다. 한 때 '정권의 시녀'란 오명을 썼던 검찰이 현 정권의 압력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엄정하고 독립적인 수사를 통해 정확한 결과를 내놓기를 기대할 뿐이다.
70년대 이후 순수 '권력형 비리'와 관련, 박정희를 제외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정권은 게이트에서 모두 자유롭지 않다. 집권 당시 정치권 주변 게이트가 불거졌을 뿐 아니라 본인과 가족이 직·간접으로 연루됐다.
또 30여년 동안 삼성, 현대, 대우, 한보, 한솔, 한빛 등 국내 굵직한 대기업은 대다수 게이트와 관련해 구설수에 올랐다. 대다수 기업은 사실로 밝혀진 '정·경 유착'의 주연이기도 했다. '일부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이트는 의혹과 추문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음해' '정치공세' '국면전환용 루머' 등은 일정부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대다수 게이트는 상당한 '진실'을 안고 있었다.
21세기 초반, 또 '이명박 게이트(?)' '○○○게이트'라고 하는 통치자(정치권)와 경제권력이 뒤얽힌 게이트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이트의 역사와 오늘을 짚어본다.
◆통치자의 아들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함께 역대 통치자들 중 드물게 '게이트'에서 거리가 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게이트'는 아니지만, 마약복용 혐의로 6번이나 구속됐다.
이후 대다수 통치자들은 특히 본인은 물론이고 권력의 배경을 활용한 아들들의 비리로 오욕을 더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는 아버지의 비자금을 관리하면서 71억여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2004년 구속됐다. 천문학적 비자금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법적 심판을 받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그나마 아들은 비리를 비켜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아버지가 현직에 있던 97년 5월 검찰의 한보그룹 특혜비리 수사과정에서 업체들로부터 이권청탁 명목으로 65억여원을 받고 증여세 13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 현철씨는 2004년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역시 '홍삼(弘三) 게이트'의 주연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과 삼남, 홍업씨와 홍걸씨는 2002년 각각 청탁 대가로 22억여원을 받은 혐의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장남 홍일씨는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과정에서 1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었다.
이회창 전 대통령 후보도 아들 수연씨의 병역의혹 문제로 곤욕을 치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도 최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현대사의 부끄럽고 안타까운 자화상들이다.
◆게이트의 시초, '워터게이트'
부패과 비리, 추문은 태초 인류의 삶과 함께했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트'란 조어는 건물이름에서 따왔듯 단순했다. 1972년 6월. 미 대통령 닉슨의 재선을 획책하는 비밀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체포됐다. 닉슨은 임기 중 사임한 유일한 대통령이 됐다.
◆이름을 딴 게이트
2009년 오늘 '노무현 게이트'에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의 억울한 조연인지, 아니면 권력의 달콤한 부패를 맛본 주연인지 궁금하다.
'정윤재 게이트'는 2007년 전 청와대 비서관인 정씨가 국세청, 건설업자 등과 얽혀 벌인 세무비리 무마사건이고, 같은 해 드러난 '김흥주 게이트'는 전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이던 김씨가 정치권 등 각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2005년 말 불거진 '김재록 게이트'는 DJ 정권에서 금융계 마당발로 통한 김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로비를 받아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최규선 게이트'의 주인공인 전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등에 업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혐의로 2002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윤태식' 등은 DJ 정권 당시 2000년부터 수년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던 4대 게이트의 주역이다. 이들은 각각 당시 G&G그룹 회장, 한국디지탈라인 대표, MCI코리아 부회장, 패스21 대주주란 직함을 갖고 있었다. 청와대, 정치권, 국정원, 검찰, 금감원, 언론계가 뒤얽힌 사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촌처형 김옥희씨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 사위 조현범씨 주가조작 의혹 등도 야당에서 주장하는 잠복 중인 '이명박 게이트(?)'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유사 게이트
남녀 관계가 얽힌 대표적 게이트로는 '지퍼 게이트'와 '신정아 게이트'를 꼽을 수 있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얽혀 2007년 불거진 '신정아게이트', 클린턴 미 전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 전 백악관 인턴의 1998년판 '지퍼 게이트'는 당시 세인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남성 권력과 여성 간의 스캔들은 '사회적 관음증'처럼 급속도로 퍼지게 마련. 올해 숨진 장자연씨는 현재까지 언론과 경제, 연예 권력의 '희생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별나고 독특한 게이트도 있다.
'화장실게이트'는 2006년 9월 세계통합 체스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국제체스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불거졌다. 바셀린 토팔로프(불가리아)는 '상대 선수가 한 게임에 50차례나 경기위원회가 제공한 개인 화장실을 다녀 혼란하다'며 비디오 촬영장치 의혹을 제기했다. 결승전이 중단되고, 개인화장실 사용을 금한 경기위원 3명이 사표를 내는 등 파장이 컸다.
프랑스의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윌리엄 레이몽이 자신의 책에서 제기한 '코카콜라게이트'(이희정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07년)도 있다. 코카콜라의 이미지는 대다수 가공된 것이며, 시장 지배를 위해 서류조작, 증거조작, 권력과의 결탁은 물론 2차 세계대전 중 유럽시장 주도권을 위해 나치에 부역까지 했다고 폭로했다.
'코리아게이트'는 미국 언론이 한국 정부와 박동선씨를 상대로 내놓은 게이트다. 한국 정부의 대리인 박동선씨가 미 의원 1인당 75만~95만 달러의 뇌물을 주는 불법 로비를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76년 10월 보도하면서 터졌다.
◆스쳐간 게이트
'오일, 도박, 빌라, 행담도, 썬앤문, 한빛 등등'. 성격이나 지명, 회사명을 딴 게이트도 다양하다. 이들 게이트는 대다수 실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거나, 정치공세 차원에서 제기됐다.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도박 게이트', 한국철도공사의 유전개발 투자의혹인 '오일게이트', 행담도 개발과 관련한 '행담도 게이트', 썬앤문 그룹의 대선자금 의혹에 맞춘 '썬앤문 게이트' 등은 노무현 정권시절 주로 야당이 제기했다. 한빛은행 불법대출 및 로비의혹을 지칭한 '한빛 게이트'는 2000년, 이회창 전 총재의 호화 가족 아파트와 관련한 '빌라 게이트'는 2002년 제기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80년대엔 정치권력과 관련된 게이트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권력형 비리나 정경유착이 없었다기 보다는 군사정권 또는 공안정국 하에서 '비리 폭로' 자체를 통제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정권이 바뀐 뒤 권력의 핵심 당사자들이 구속되는 사태로 '게이트'의 몸통이 드러난 셈이다.
◆외국의 게이트
미국의 '리크 게이트' '엔론 게이트', 영국 '셰리 게이트' 등이 주목을 받았다.
부시 행정부의 막후 실력자들이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인 조지프 윌슨 전 대사가 부시의 이라크전 추진을 반대하자, 윌슨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의 신분을 언론에 유출한 사건, '리크 게이트'. 미 연방지법은 2007년 6월 리비 전 미 부통령 비서실장에게 게이트 연루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2001년 12월 파산한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 '엔론사'의 부시 행정부 및 정치권 로비사건인 '엔론게이트'는 미국의 전형적인 정경유착 사례를 보여줬다. 2002년 12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 블레어 여사가 사기 전과자들의 도움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한 사건인 '셰리 게이트'도 한동안 영국 정가를 흔들었다.
◆게이트를 보는 시각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사회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집중'을 게이트의 주요 고리로 봤다. 김 교수는 "대통령 권한이 막강하다 보니 가족은 물론 친.인척들까지 그 뒷배경을 삼은 부패에 연루됐다"며 "대통령의 권한 범위에 제한을 두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주변의 무능하고 부패한 일부 '패밀리'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홍덕률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투명하지 못한 사회 ▷지위와 권력의 속물화 ▷사회 전반의 도덕적 해이를 게이트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홍 교수는 "권력감시 체제를 강화해 사회 투명성을 높이고, 위계적 네트워크 사회모델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로 가야 한다"고 했다. 또 "전문가 윤리를 실천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제대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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